오피니언(사설,칼럼)
아산 LCD 단지를 삼성이 도시로 만들었다면…
설경.
2008. 3. 4. 14:00
지방 경제에 한파가 불어닥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추위를 덜 타는 지역이 있다. 충남 당진, 전남 여수, 경남 창원 등지는 연초 전국 분양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높은 아파트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국내 최고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을 자랑하는 울산, 지난 수년간 기업이 몰려든 충남 천안·아산, 조선 붐이 일고 있는 경남 거제·통영·고성 같은 곳들도 경제가 나쁘지 않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모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사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경제에 대기업이 창출하는 고용과 납부하는 세금만한 효자가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5년 전인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도시(Enterprise City)'를 주창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방에 기업 주도로 계획 도시를 만들고, 여기에 수준 높은 교육·의료시설을 확보해 수도권 기업들을 유치하자는 구상이었다.
당시 지역균형발전을 고심하던 노무현 정부는 솔깃해서 이 아이디어를 받았다. 2년 뒤인 2005년 충주·원주·태안·무주·무안 등 5곳이 기업도시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 이후 기업도시에서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고 있다. 현대건설이 간척지 땅을 확보하고 있는 태안 기업도시만 지난해 하반기 착공했을 뿐, 나머지 지역은 지지부진하다. 전북 무주는 땅 수용 문제로 개발업체와 주민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고, 전남 무안의 경우 개발 규모가 당초 계획의 10% 선으로 축소됐다.
기업도시가 부진한 이유는 도시 개발과 설계, 발전을 주도해야 할 '기업'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기업도시 민간사업자를 보면 하나같이 건설업체들이다. 기업도시 건설 후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낼 대규모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 탄탄한 연구개발(R&D) 역량으로 기업을 빨아들이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세계적인 대학·연구시설은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말이 기업도시지 흔한 지방 산업단지나 관광레저타운과 다를 바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해 당사자들도 기업도시의 중장기 발전보다 단기간의 개발 이익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기업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도시의 형제 뻘쯤 되는 과학도시를 지방 발전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기초과학과 비즈니스가 어우러지는 국제적 과학도시를 지방에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때처럼 주체가 돼야 할 기업이 배제된 채 정부와 지자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식이라면 선뜻 돈보따리를 풀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민간 대기업에 과학도시 건설을 맡기고 정부는 필요한 지원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도요타시(市)이다. 지금도 아산 탕정 LCD 단지 일대를 삼성 주도로 개발해 기업도시 성공 모델을 만들었으면, 국내 다른 지역에 대한 파급효과가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수익성이 떨어져 정부 주도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주거·교육·의료 환경부터 구축해야 한다. 기업이 지방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재들이 지방행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자립형 사립고와 국제학교 설치, 세계 유수의 대학·병원 유치를 통해 자식 교육 걱정, 건강 걱정 할 일이 없어지면 수도권의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도 몰려들 것이다.
[최유식 산업부 차장대우 find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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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모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사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경제에 대기업이 창출하는 고용과 납부하는 세금만한 효자가 없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5년 전인 2003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도시(Enterprise City)'를 주창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지방에 기업 주도로 계획 도시를 만들고, 여기에 수준 높은 교육·의료시설을 확보해 수도권 기업들을 유치하자는 구상이었다.
당시 지역균형발전을 고심하던 노무현 정부는 솔깃해서 이 아이디어를 받았다. 2년 뒤인 2005년 충주·원주·태안·무주·무안 등 5곳이 기업도시로 선정됐다.
하지만 그 이후 기업도시에서는 우울한 소식만 들려오고 있다. 현대건설이 간척지 땅을 확보하고 있는 태안 기업도시만 지난해 하반기 착공했을 뿐, 나머지 지역은 지지부진하다. 전북 무주는 땅 수용 문제로 개발업체와 주민 간 갈등이 벌어지고 있고, 전남 무안의 경우 개발 규모가 당초 계획의 10% 선으로 축소됐다.
기업도시가 부진한 이유는 도시 개발과 설계, 발전을 주도해야 할 '기업'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기업도시 민간사업자를 보면 하나같이 건설업체들이다. 기업도시 건설 후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낼 대규모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 탄탄한 연구개발(R&D) 역량으로 기업을 빨아들이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세계적인 대학·연구시설은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말이 기업도시지 흔한 지방 산업단지나 관광레저타운과 다를 바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해 당사자들도 기업도시의 중장기 발전보다 단기간의 개발 이익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기업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갈등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도시의 형제 뻘쯤 되는 과학도시를 지방 발전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기초과학과 비즈니스가 어우러지는 국제적 과학도시를 지방에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때처럼 주체가 돼야 할 기업이 배제된 채 정부와 지자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식이라면 선뜻 돈보따리를 풀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민간 대기업에 과학도시 건설을 맡기고 정부는 필요한 지원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의 도요타시(市)이다. 지금도 아산 탕정 LCD 단지 일대를 삼성 주도로 개발해 기업도시 성공 모델을 만들었으면, 국내 다른 지역에 대한 파급효과가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다.
수익성이 떨어져 정부 주도 개발이 불가피하다면 세계적인 수준의 주거·교육·의료 환경부터 구축해야 한다. 기업이 지방을 기피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인재들이 지방행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자립형 사립고와 국제학교 설치, 세계 유수의 대학·병원 유치를 통해 자식 교육 걱정, 건강 걱정 할 일이 없어지면 수도권의 기업은 물론, 외국 기업도 몰려들 것이다.
[최유식 산업부 차장대우 find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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