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뉴스

학생·학부모 외면하는 학교 교과편성 재량권

설경. 2008. 3. 5. 14:01

교육부의 현행 7차 교육과정은 학교에 교과편성 재량권을 대폭 넘긴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오히려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제대로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등 문제를 낳고 있다.

충분한 시설이나 교사수급이 전제되지 않은 채 무리하게 교육정책을 시행한 결과다.

학교가 입시요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짠 교과과정 때문에 서울대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은 이 모(19) 군.

이 군이 졸업한 부산 C고등학교는 이에 대해 당시 과학심화교과를 원하는 학생이 한 반을 구성할 수 있는 숫자가 안 됐고, 과학교과 교사도 부족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자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이 선택한 과목을 학교가 개설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 군의 어머니는 "학교에서 학생에게 선택권을 줬으면 원하는 교과목을 개설해주는 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고등학교의 경우 2002년부터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는 7차교육과정은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학교의 교과편성 재량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부산시교육청의 '교육과정 운영계획'을 보면 학생이 선택한 과목을 가능한 한 개설해주라고 해마다 권고하고 있다.

또 한 반이 구성되지 않거나, 교사가 부족해 과목을 개설하지 못할 경우는 학교 간의 협력체계를 구축하거나 외부기관 위탁, 또는 방학을 이용한 과정을 개설하는 등의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알고보면 이 대안조차도 교육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의 결과물일 뿐이다.

외부기관 위탁의 경우는 스페인어와 중국어든 일부 외국어 과목에 한정해 인근 대학에 위탁교육하는 경우가 전부일 뿐, 학교 간 협력체계 구축이나 방학 중 과정개설 등의 형태는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다.

부산 모 고등학교 진학담당 교사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실제로 학생이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다시 자기 학교로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아니냐"고 고개를 저었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학습 선택권을 최대한 반영하려면 소규모 강의실 등 학교시설과 충분한 교원수급이 우선 전제돼야 한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일선 학교의 여건은 아직까지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충분히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는데도, 무리하게 학교에 재량권을 넘겨준 것은 구식 하드웨어에 최신식 소프트웨어를 무리하게 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대 입시요강 하나도 못맞춰 주는 고교가 부산 전체 일반계 고등학교의 4분의 1에 달한다는 결과는, 충분한 학교시설이나 교원수급 없이 추진된 학교의 재량권 강화가 되레 학생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현행교육제도의 모순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부산CBS 장규석 기자 hahoi@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