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영화와 논술] 사회적 편견을 다룬 영화들

설경. 2008. 3. 13. 15:41


영화 '척 앤 래리' '잘 나가는 그녀에게는 왜 애인이 없을까'의 장면들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 존중해줘야
'편견'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사실상의 근거 없이 지니게 되는 완고한 의견을 지칭한다. 대개 '선입관'이라는 용어와 함께 거론된다. 편견이나 선입관은 모두 직접적인 경험 이전의 상상이나 소문에 의존한다. 첫 인상이나 소문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대상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편견은 어느 사회 어느 집단에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편견이 몇몇 소수 집단들에 대해서는 '폭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흑인이나 유대인들과 같은 몇몇 인종에 대한 생각이나 동성애자나 에이즈환자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들 말이다.

편견은 사회화 과정에서 학습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다. 한 집안의 가풍이나 지역색도 편견의 일종이다. 흥미로운 것은 편견 역시 역사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가령 지금은 보편적이지만 '피임'이 합법적인 가족계획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192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피임'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임신을 회피한다는 것은 신에 대한 저항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편견은 분명 사회적 장애물이기는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의견에 개방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성애'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작 '필라델피아'는 주인공인 앤드류(톰 행크스 분)가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임이 밝혀지는 데서 시작된다. 문제는 앤드류가 백인이며 변호사라는 것이다. 동성애자 그리고 에이즈 환자는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다. 앤드류는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의 상류층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부당해고를 당하고 만다. 상류층이라는 표식에 동성애자나 에이즈 환자라는 소수자의 징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는 그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지난함 속에는 '동성애'나 '에이즈 환자'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전제가 포함돼 있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아련한 아리아 음색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앤드류의 고백이 감동적인 것도 그 무게감과 연관돼 있다.
15년의 세월이 지난 현재, 영화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달라져 있다. 2007년 개봉했던 코미디 영화 '척 앤 래리', 2008년도 작품 '잘 나가는 그녀에게는 왜 애인이 없을까', 그리고 2006년 한국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이를 잘 보여준다. '척 앤 래리'는 동성부부의 혼인 문제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는 '필라델피아'가 지니고 있는 심각함이나 무게감이 들어설 틈이 없다. 소방관 사회라는 마초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보수적 남성들의 편견을 오히려 농담의 코드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잘 나가는 그녀에게는 왜 애인이 없을까'라는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예쁘고 활달하며 능력 있는 여주인공은 왜 자신에게 애인이 없을까 고민한다. 그녀는 이 고민 중에 자신이 지금껏 성정체성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 작품은 '필라델피아'처럼 진중하지도, 그렇다고 '척 앤 래리'처럼 장난스럽지도 않다. 다만, 이러한 발견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드라마적 구성으로 제시할 뿐이다.

최근에 발표되는 동성애에 관한 영화들은 이 문제들을 심각한 개인의 위기나 사회적 충돌의 계기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살면서 부딪치게 되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정도로, 그 무게감을 줄이고 있다. 이는 한편 동성애에 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과거보다는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다. 그리고 때로 그 편견은 각각의 종교적, 계층적 입장에 따라 신념이거나 윤리가 되기도 한다.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 역시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사항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다양한 사회적 의견 중 하나로 축약됐다는 사실이다.

편견은 폭력적이지만 반대는 개방적이다. 중요한 것은 편견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편견 이외의 다양한 의견이 공존할 수 있을 개방성이다. 후설은 객관성을 '상호주관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나에게 옳은 것이 당신에게도 옳은 것일 때, 상호주관성은 완성되고 객관성이 제시된다. 성적 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역시 이러한 전제 아래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최근 영화에 나타난 다양한 시각이 반가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더 생각해볼 문제
① '마녀, 여성, 이교도'와 같은 말들이 가리키는 편견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②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정대상에 대한 편견이 어떤 것이 있는지 목록을 적어보자.

③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다른 삶을 찾아간 영화들을 좀 더 찾아보고 그 작품에 대해서 논해보자. '어거스트 러쉬'나 '빌리 엘리어트', '소년은 울지 않는다'와 같은 작품이 예시가 될 수 있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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