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최은희 여기자상' 25주년 이혜순 교수가 말하는 '어머니 최은희'
설경.
2008. 3. 18. 17:13
'최은희 여기자상' 25주년… 이혜순 교수가 말하는 '어머니 최은희'
"취재 원고 불에 탈까 장독대에 보관하셨죠"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자료 모아 집필 활동"
"제가 머리가 하얘지니 어머니 빼닮았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웃음) 최은희 여기자상 1회 시상식 때부터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갈 때마다 나도 기자가 되어 저 상을 한 번 받아봤으면 참 영예로웠겠다 싶은 생각을 하지요."
"제가 머리가 하얘지니 어머니 빼닮았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웃음) 최은희 여기자상 1회 시상식 때부터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갈 때마다 나도 기자가 되어 저 상을 한 번 받아봤으면 참 영예로웠겠다 싶은 생각을 하지요."
��원고를 집필 중인 생전의 최은희 선생. /조선일보 DB
��생전의 최은희 선생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막내딸 이혜순 교수.“ 올해는 또 어떤 분이 최은희여기자상을 수상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며 수줍게 웃었다.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흑백사진 속 최은희(崔恩喜·1904~1984) 선생의 이목구비를 그대로 물려받은 이혜순(66) 이화여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내내 소녀처럼 들떠 있었다. 일제시대 공창과 인신매매 폐지, 여성 노동자의 임금 차별 철폐를 주장했던 조선일보 기자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추계 최은희 선생의 3남매 중 막내딸이다.
이 교수는 한국전쟁 중 대한보건회를 이끌던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군인들에게 줄 주먹밥 싸던 일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했다. 1983년 5월 6일 최은희 선생이 병상에서 '평생 글을 써서 모은 쌈짓돈 5000만원을 후배 여기자들을 위해 써달라'는 편지를 대필(代筆)해 조선일보사에 전달한 것도 그녀다.
이 교수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지향했던 최고의 여성상이었다.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취재하고 자료 모아 글을 쓰셨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당시 한 여성지에 연재하시던 '개화여성열전'을 중단해야 할 처지가 되었는데, 미리 써놓은 6개월치 원고를 불이 나도 타지 않게 장독대에 보관해 놓으셨더라고요."
이 교수에 따르면, 최은희 선생은 조선일보를 떠난 1931년 이후 여성단체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치면서도 자식 사랑은 대단했다. "제가 돌 무렵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3남매를 당신 혼자 어렵게 키우셨죠. 그래서인지 밖에선 추상(秋霜)처럼 엄하셨지만 저희들에겐 한없이 자상하셨어요.
이 교수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지향했던 최고의 여성상이었다.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취재하고 자료 모아 글을 쓰셨으니까요.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당시 한 여성지에 연재하시던 '개화여성열전'을 중단해야 할 처지가 되었는데, 미리 써놓은 6개월치 원고를 불이 나도 타지 않게 장독대에 보관해 놓으셨더라고요."
이 교수에 따르면, 최은희 선생은 조선일보를 떠난 1931년 이후 여성단체에서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치면서도 자식 사랑은 대단했다. "제가 돌 무렵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3남매를 당신 혼자 어렵게 키우셨죠. 그래서인지 밖에선 추상(秋霜)처럼 엄하셨지만 저희들에겐 한없이 자상하셨어요.
언니(이미순 전 덕성여대 교수)가 법대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이태영 변호사가 변론하는 재판장엘 데려가셨고,
폐가 나빴던 오빠(이달순 전 수원대 교수)를 매일 아침 인왕산에 가서 세수하고 솔잎을 따먹게 해 건강을 회복시켰죠."
'부귀영화는 곧 사라져도 지식은 남는다'가 최은희 선생의 지론. "덕분에 가난 속에서도 3남매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고, 그래서 모두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 같다"며 이 교수는 웃는다.
'부귀영화는 곧 사라져도 지식은 남는다'가 최은희 선생의 지론. "덕분에 가난 속에서도 3남매가 장학금을 받기 위해 악착같이 공부했고, 그래서 모두 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 같다"며 이 교수는 웃는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여겼던 것도 어머니의 유머와 지혜 덕분이었다.
"누가 우리 집 찾아오는 길을 물으면 어머니는 늘 '서울에서 제일 누추한 집으로 오세요' 하셨어요. 밤마다 이불 속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셨고요. 옷이 작아져 후배의 교복 웃옷을 빌려 입고 고등학교 졸업식 시상대에 선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긴 하셨지만, 아버지의 빈 자리를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어머니는 자식들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주셨어요.
"이 교수에게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최은희여기자상'은 뜻깊다. "1회 수상자였던 신동식 당시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의 일과를 어느 방송사에서 다큐로 찍어 보여줬는데, 한국의 여기자들이 저렇게 전투적으로 살아가나 싶어 놀랐던 기억이 생생해요. 요즘은 그 영역이 국내외로 더욱 넓어졌지요.
최은희여기자상이 수상자 개인의 명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여기자들의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들 개개인의 업적이 결국은 한국현대여성사의 중요한 물줄기를 이룰 테니까요."
생전의 최은희 선생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막내딸 이혜순 교수,
올해는 또 어떤 분이 최은희 여기자상을 수상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며 수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