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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시론 (`명.계.남' `태.현.실' 공천)

설경. 2008. 3. 18. 18:16
(서울=연합뉴스) 4.9 총선을 겨냥한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천이 사실상 일단락됐다. 한나라당은 245개 전 지역구의 공천을 마무리했고 민주당은 일부 전략 지역을 제외하고 호남과 수도권 등 대부분 지역의 공천을 확정했다. 한때 민주당의 수도권 전멸론까지 나돌던 총선 판세가 조각 인사 파동 등으로 휘청하면서 두 당은 공천과정에서 개혁 선명성을 놓고 필사적인 경쟁을 벌였다. 한나라당이 먼저 금고 이상 형 확정자에 대해 공천 신청조차 불허하며 기선을 잡는 듯 했으나 민주당이 이른바 `저승사자 공천'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또 민주당이 호남 현역 35%를 물갈이하자 한나라당은 이에 질세라 영남 현역 44% 물갈이로 응수했다.

양당의 공천 물갈이 경쟁은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칼질이라는 측면에선 일부 여론의 호의적 반응도 있었지만 기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국민의 눈높이에는 훨씬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우선 한나라당은 계파 공천, 연줄 공천의 냄새가 너무 짙다. 초기에는 나눠 먹기 양상을 띠더니 나중엔 승자독식 쪽으로 기울었다. 친박(親朴)계가 탈락한 자리에 친이(親李)계가 포진하면서 어느 정도 균형 이뤘던 양측의 세력분포가 3분의 1 내지 4분의 1수준으로 벌어졌다. 오죽하면 `명.계.남(이명박계만 살아남은) 공천'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친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이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한나라당에 남아 있다'고 했지만 실제 선거과정에서 전국적 지원 유세를 벌여야 할 박근혜 전 대표야는 오히려 `마음은 떠나고 몸만 남은' 형국이 됐다. 박 전 대표가 친이쪽 공천자들을 위해 지원 유세를 벌일 가능성은 별반 없고 오히려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박 탈락자들을 무언으로라도 돕는 야릇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친박 무소속 출마자들은 "우리가 살아야 위기의 박근혜를 살릴 수 있다"며 읍소 전략을 펼 것이다. 양대 계파 다툼에 소계파 맹주들의 자기 사람 심기도 극성을 부렸다. 원칙이나 기준 없는 공천심사위원회의 결정은 무수한 불복만 낳았다.

민주당은 전체 176개 공천신청지역 중 128곳의 공천이 완료된 상태에서 당초 박재승 위원장이 내건 호남권 30% 물갈이는 실행에 옮겨졌고 3차 발표에서는 4선 의원 출신의 정균환 최고위원(전북 고창.부안)이 탈락하는 등 과감한 개혁의 모양새를 살린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비호남권은 공천 칼날이 무뎌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본선 경쟁력 차원에서 그나마 수도권에서 승부를 해 볼 수 있는 현역 의원이나 재선 이상 중진들의 공천이 불가피했고 이들의 대안으로 내세울 외부 인사도 마뜩지 않다는 현실론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태.현.실(공천 받은 사람의 태반이 현역 실세) 공천'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은 `수도권 최소한 20% 이상 물갈이' 약속이 어긋났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옛 민주당계의 공천 소외에 대한 불만과 향후 있을 비례대표 공천을 둘러싼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 간의 갈등 예고는 당의 총선 단일 대오 전망마저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 공천과정에서 양당 모두 당원의 의견을 모아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제도를 사실상 배제한 채 공심위라는 제왕적 기구를 통해 공천을 단행한 것은 정당정치의 명백한 후퇴라는 지적이 많다. `돈 경선',`동원 경선' 등의 부작용과 폐해를 모르는 바 아니나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3김 시대' 이후 어렵사리 쟁취한 상향식 공천제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