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이탈리아 로마에 살고 있는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63)는 국내에서 가장 인기 높은 작가의 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20종 가까이 번역된 그의 책은 해마다 20만권 가량이 팔린다. 독자층도 다양해서, 초등학생에서 지식인까지 두루 찾는다. 이탈리아라는, 심리적으로 다소 거리가 먼 나라의 역사에 관한 책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권에 있다는 것은 예외적인 현상이라 할 일이다. <로마인 이야기9-현명한 황제들>을 끝내고 한국어판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를 지난 21일 로마 시내에서 만나 `한 역사애호가의 세상 읽기'를 주제 삼아 이야기했다. -<로마인 이야기> 제9권을 끝냈는데, 매년 한 권씩 모두 15권으로 정리하겠다고 한 약속에 비추어보면 3분의 2쯤 왔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심경은 어떤가? =몹시 피곤하다. 내 나이에 1년에 한권씩 책을 쓴다는 건 육체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딴 생각은 없고 10권을 집필하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다. -당신은 이제까지 쓴 책은 우리의 상식이랄까, 상식적 감각에 도전하는 내용이 많았다. 가령, 제7권 <악명 높은 황제들>에서 칼리굴라나 네로의 새로운 면을 밝혀 보였는데, 새 책에서도 그런 상식 도전을 감행했나? =지금까지 나는 책을 쓰면서 상식에 도전한다거나 상식을 뒤엎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부풀리거나 없는 것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그대로 전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당신이 쓴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흥미로운 책이다. 냉정한 정치이론가를 `나의 친구'라고 부르는 게 호기심을 자못 유발시키는데, 마키아벨리는 애초부터 당신의 친구였나, 아니면 책을 쓰다보니 친구가 됐나? =마키아벨리는 오래 전부터 나의 동료였다. 르네상스 시기에 관한 책들을 쓸 때 그의 관점이 인물들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단테가 <신곡>에서 로마의 시인 비르질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을 방문했듯이 나는 마키아벨리의 안내로 르네상스 시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르네상스 인물들에 대한 글을 마쳤을 때 그는 나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가 됐다. 그래서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의 친구'라고 했고, 그에 관한 책을 썼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키아벨리즘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인가. 그러니까, 당신이 강조하는 현실주의적 태도가 그것인가? =마키아벨리식의 세상보기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마키아벨리는 도덕주의자가 아니다. 도덕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이게 더 선하고, 이게 더 악하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어떤 방법이 최상인가를 따질 뿐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500년 동안 도덕주의자, 이상주의자, 감상주의자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정치행위가 인간에게 유용하냐를 묻는 일이다. -마키아벨리가 합법성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런 행위가 결과적으로 다수에게 이롭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 작고한 일본 총리 오부치 게이조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겠다. 일본 사람들은 그가 훌륭한 인격자라며 점수를 후하게 줬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가 대단한 정치가였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유능한 정치가이지 인격적으로 훌륭하기만 한 정치가는 아니다. 이것은 정치적 효용성의 문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로마인 이야기>에서 핵심인물로 다룬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능한 정치가였는가? =카이사르는 인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만약 카이사르가 한국의 축구대표팀 감독이라면, 그리고 한국에 훌륭한 선수들이 많다면, 그는 틀림없이 한국팀을 우승으로 이끌 사람이다. 선수들은 카이사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이다. -그의 인간적 매력에 매혹된 듯한데, 카이사르의 장점은 무엇인가? =나는 그의 모든 면을 다 좋아한다. 그가 지닌 약점조차도 매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최대 장점을 하나만 꼽으라면 자신을 완벽히 컨트롤할 줄 알았다는 점을 들고 싶다. -카이사르의 통치 스타일이나 퍼스낼리티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보는가? =지금 세계가 원하는 정치가가 바로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이다. 특히 요즘의 정치가는 자기 책임에 대해서는 발을 빼는 경우가 많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는데, 오늘날의 정치가는 불가능한 것을 하겠다고 장난치는 경우가 많다. -왜 오늘날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평화시기에는 꼭 뛰어난 정치가가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는 그렇지 않다. 냉전 해체 이후 미국은 유일 초강대국이지만,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는 책임을 졌는가. 팍스 로마나(로마가 이루는 평화)와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이 이루는 평화)의 차이는 뭔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은 그것을 원하지만, 그럴 자격이 없다.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미국은 발칸 반도 전쟁 때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 공중에서 폭탄만 퍼부어 많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혔다. 자기 군대를 희생시킬 뜻도 없으면서 평화를 주도할 수는 없다. 로마는 책임을 졌다. -당신은 국가 사이의 교류와 개방을 강조한다.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를 이야기할 때도, 고대 로마를 이야기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이 교류와 개방을 오늘날의 국제관계에 그대로 대입한다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계화가 모든 나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부자 나라만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에도 있고, 프랑스에도 있다. 그러나 문을 여는 데 겁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문을 열면 좋은 것도 들어오고 나쁜 것도 들어온다.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위험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는 일이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외부의 것을 흡수할 수 있다. "당신은 글에서 남자, 사나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남성적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강한 것 같다. 특히 남성적 세계의 표상이라 할 전쟁, 지배, 정치 등에 관심이 많은데 "? =내가 여자인데, 당연히 남자에게 관심 가질 수밖에. 이 말은 농담이다.(웃음) 우리 인간들은 갖가지 형태의 조직체를 만들어 보았다. 그러나 리더가 없는 조직체를 만들어 유지한 적은 없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리더가 돼야 국가나 정부 같은 큰 조직체의 목적 달성을 더 쉽게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 늘 남자가 있었다. -그런 관점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남자든 여자든 상관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나는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덜 폭력적이거나 더 평화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법적으로 보면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할 일은 불이익을 당하는 여자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로마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당신은 로마 귀족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혜택받은 자들의 책임)를 자주 거론했다. 한국은 이것이 매우 부족한 나라인데 .... =그런 점에선 일본도 마찬가지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그리스의 스토아철학이 로마에 유입된 뒤 생활화한 관념이다. 이것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무엇보다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들의 삶의 질을 더 높이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관념을 실천한다면 사회가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출처 : 인터넷 한겨레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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