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교과서 뒤집어읽기]김수영의 시 ‘풀’
설경.
2008. 4. 8. 15:49
[동아일보]
김수영의 시 '풀'은 정밀한 자연 관찰의 결과
직관-영감인 줄만 알았는데… 과학이 깔려 있는 詩語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사실이라면?
○ 생각의 시작
시(詩)는 문학입니다.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은 감정과 정서의 표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직관과 영감으로 창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진술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요? 시에는 논리가 없고, 시에는 과학이 없을까요?
이 시에 대한 보편적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타당합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고, 풀은 그에 따라 흔들리기만 한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인이 보기에 풀은 자신의 삶과 생명력을, 주체성을 가진 존재이다. 좁은 땅에 뿌리박고 지루한 삶을 견디며 자유로운 바람에 희롱당하는 것 같지만, 기실 풀의 생명력은 무엇보다도 강인하다. 그것은 자기 삶을 훌륭하게 견뎌낸다. 때로 그것은 바람보다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나는 예언자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쓰러졌을 때 먼저 일어나고 울 때 먼저 웃는 인고자(忍苦者)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풀과 바람의 싸움은 이 세상에 있는 연약한 민중들의 굳센 생명력과 그것을 억누르고 괴롭히려는 세력의 싸움인 것이다. 이 싸움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하잘것없어 보이는 생명의 끈질김이야말로 어떤 불의한 외부의 억압도 이겨내는 힘임을 보여 준다.' [최대식, '동아누리']
○ 의문의 시작
풀이 눕고 일어난다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풀이 웃고 운다는 것은 그때 나는 소리를 가리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지 않나요?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풀이 먼저 눕는다거나, 바람이 그치지도 않았는데 풀이 먼저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역시 시(詩)는 비논리적이야. 바람이 불어야 풀이 눕는 건데 시인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변형시켰군'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관념을 버리고 현실을 잘 살펴보십시오. 이 시가 자연 현상을 아주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바람은 촉각과 청각으로 느껴집니다. 피부를 스쳐 가는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때, 그리고 그 소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바람이 있음을 압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는 상황을 그려봅시다.
어떻습니까? 이 시는 비논리적이거나 시인이 머릿 속에서 허구적으로 상상한 것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사고력은 선입견을 버리고 숨어 있는 것을 찾을 때 확장될 수 있습니다.
○ 숨어 있는 사실을 보자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는 생각은 표면만을 본 결과입니다. "스포츠는 정치이고, 경제이며, 과학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①스포츠와 정치=1936년 고(故) 손기정 할아버지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베를린 올림픽 당시 독일의 통치자는 히틀러였습니다. 그는 올림픽을 이용해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②스포츠와 경제=소위 '스포츠 강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력이 월등한 나라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프로 골프선수 최경주의 PGA 우승을 경제적 효과로 계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나요?
③스포츠와 과학=세계적인 수영선수 박태환이 전신 수영복을 입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지요? 전신 수영복을 만드는 데는 유체역학(액체, 기체 등 흐르는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 조금 불경(不敬)스럽기는 합니다만…
김수영 시인의 '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도 있더군요.
여성의 성욕. 이 말에서 혹자는 기존의 일반화된 해석을 뒤엎는 이명원의 전복성에 당혹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명원은 "김수영이 말년에 '성'을 발표했던 점을 감안하면 '욕망의 김수영'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항 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마조히스트였고, 이육사가 비애의 시인이라는 재해석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 김수영의 시 '풀'에 관한 새로운 해석과 관련 자료는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근의 청솔학원 언어논술팀장
김수영의 시 '풀'은 정밀한 자연 관찰의 결과
직관-영감인 줄만 알았는데… 과학이 깔려 있는 詩語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 사실이라면?
○ 생각의 시작
시(詩)는 문학입니다.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은 감정과 정서의 표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는 직관과 영감으로 창작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진술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그것뿐일까요? 시에는 논리가 없고, 시에는 과학이 없을까요?
이 시에 대한 보편적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타당합니다.
○ 의문의 시작
풀이 눕고 일어난다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고, 풀이 웃고 운다는 것은 그때 나는 소리를 가리키는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지 않나요? 풀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먼저 일어난다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풀이 먼저 눕는다거나, 바람이 그치지도 않았는데 풀이 먼저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보통 '역시 시(詩)는 비논리적이야. 바람이 불어야 풀이 눕는 건데 시인은 그것을 주관적으로 변형시켰군'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관념을 버리고 현실을 잘 살펴보십시오. 이 시가 자연 현상을 아주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바람은 촉각과 청각으로 느껴집니다. 피부를 스쳐 가는 공기의 흐름이 느껴질 때, 그리고 그 소리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바람이 있음을 압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는 상황을 그려봅시다.
어떻습니까? 이 시는 비논리적이거나 시인이 머릿 속에서 허구적으로 상상한 것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사실을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처럼 사고력은 선입견을 버리고 숨어 있는 것을 찾을 때 확장될 수 있습니다.
○ 숨어 있는 사실을 보자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라는 생각은 표면만을 본 결과입니다. "스포츠는 정치이고, 경제이며, 과학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①스포츠와 정치=1936년 고(故) 손기정 할아버지가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베를린 올림픽 당시 독일의 통치자는 히틀러였습니다. 그는 올림픽을 이용해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고자 했습니다.
②스포츠와 경제=소위 '스포츠 강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은 대부분 경제력이 월등한 나라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프로 골프선수 최경주의 PGA 우승을 경제적 효과로 계산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나요?
③스포츠와 과학=세계적인 수영선수 박태환이 전신 수영복을 입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지요? 전신 수영복을 만드는 데는 유체역학(액체, 기체 등 흐르는 물질을 연구하는 학문)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 조금 불경(不敬)스럽기는 합니다만…
김수영 시인의 '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도 있더군요.
여성의 성욕. 이 말에서 혹자는 기존의 일반화된 해석을 뒤엎는 이명원의 전복성에 당혹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명원은 "김수영이 말년에 '성'을 발표했던 점을 감안하면 '욕망의 김수영'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항 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마조히스트였고, 이육사가 비애의 시인이라는 재해석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 김수영의 시 '풀'에 관한 새로운 해석과 관련 자료는
이지논술 홈페이지(easynonsul.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근의 청솔학원 언어논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