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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과 소통]“기업 상속세는 징벌적 과세” “경영권 승계는 특권 대물림
설경.
2008. 4. 1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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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왼쪽)과 최영태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이 지난 11일 경향신문사 옆 프란치스코회관 벤치에서 상속세 폐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세구 선임기자 |
ㆍ이현석 “할증세율 너무 높아 자본이득세로 대체해야”
ㆍ최영태 “재산권과는 달라… 변칙증여 관행 되살아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 완화나 감세 정책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4일 한승수 국무총리와 상의회장단 간담회에서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왔다. 손 회장의 주장은 재산을 물려받는 시점이 아니라 상속받은 재산을 처분할 때 양도소득세로 과세하자는 얘기다. 그래야 상속받은 기업인이 경영권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경영권과 재산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재벌기업의 인식 수준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한상의 이현석 조사본부장(상무)과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최영태 소장(공인회계사)은 지난 11일 경향신문사에서 상속세 폐지 및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로 대체 논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본부장은 “징벌적인 상속세 대신 장기적으로 자본이득세로 전환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부(富)를 정당하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상속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이현석 본부장(이하 이현석)=우선 손 회장이 상속세를 당장 폐지하자고 말한 것은 아니란 점부터 밝힙니다. 손 회장은 할증과세 등 때문에 상속세 부담이 너무 높고, 가업 상속을 위해서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건의한 것입니다. 새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상속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대안으로 자본이득세 같은 것을 도입하는 방안을 공론화할 시점이 되지 않았느냐는 취지였습니다.
최영태 소장(이하 최영태)=상속세가 세율이 높은 것 때문에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오래 가지고 있으면 가치가 올라갑니다. 그런데 선대가 사망할 때까지 이런 자본이득에 세금을 낸 적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세금에 ‘특권’을 상속받는다는 점이 더해져서 상속세가 소득세에 비하면 세율이 좀 높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고, 한꺼번에 내다 보니까 높아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이현석=상속세 비중은 연간 7000억~8000억원으로 전체 세수의 0.4~0.5%이고, 납세자는 200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세수는 얼마 안되는데 기업의 부담은 매우 크지요. 부의 재분배, 형평성 등을 위해 상속세를 만들었는데 당초 취지와 달리 정당한 부나 경영권의 승계까지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세 체계가 징벌적인 체계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최영태=이 부분은 두 개로 나눠 봐야 합니다. 특히 기업과 관련해서는 재산의 상속이 있고, 경영권의 상속이 있습니다. 문제는 경영권인데, 상속세 때문에 지분율이 낮아져 경영권을 유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영권이 재산권처럼 상속을 보장받을 수 있느냐는 데 대해서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경영은 능력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이현석=경영능력이 없는데 무조건 승계해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오너이기 때문에 승계해 줄 수 없다는 사회적인 인식도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노력의 대가를 자신이 갖거나 대물림하려는 본질적인 욕구에 의해 기업을 경영하는데 이런 게 없으면 활력이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상속세는 세율 자체가 높다는 문제가 있고, 체계도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조세율은 50%까지인데 프랑스 같은 경우 60%에 달하기도 하지만 독일·일본은 50%이고, 미국은 45%로 우리보다 약간 낮습니다. 또 프랑스·독일 같은 경우 직계일수록 좀 낮게, 인척관계가 멀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차등세율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최영태=우리가 본받아야 할 나라는 적어도 기업활동이 왕성한 독일, 미국, 일본 같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상속세를 폐지한 호주나 캐나다 같은 곳은 기업이 별로 없고 자원으로 사는 나라여서 비교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독일은 상속세를 강화해서 전문 경영인이 탄생한 반면 영국은 가족 경영으로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이현석=가업 승계는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니고, 장점도 상당히 많습니다. 경영 노하우가 전수돼 기업의 경쟁력이 계속 유지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업상속을 할 수 있는 요건이 너무 엄격합니다. 또 최대주주는 지분율 50%를 넘으면 주식에 대해 65%까지 할증평가를 받습니다. 경영권 프리미엄 때문에 할증을 하지요. 하지만 상장 주식에 대해서는 할증과세를 폐지해야 합니다. 시장에서 평가를 하는 게 맞습니다. 비상장 주식도 일률적으로 할증을 해서는 안되고 기업 상황에 따라서 어떤 기업은 할증, 어떤 기업은 할인을 융통성 있게 해야 합니다. 할증의 폭도 좀 줄이고, 등급도 세분화해야 합니다.
최영태=미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통과를 낙관했지만 오히려 부자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책임있는 부자들의 모임’에서 “상속세를 폐지하면 미국 자본주의가 망한다”며 막았습니다. 완화 대상도 잘 나가는 기업들이 아니라 땅만 있는 농장 등 세금 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정말 기술력 좋고 돈 잘버는 기업까지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옥석을 잘 가려야 합니다.
이현석=상속세가 과연 태생적으로 합당한 것인가는 과세 철학의 문제로 결론내리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재산이 가족에게 승계되는 것은 ‘자연권’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 헌법의 재산권 인정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가족의 재산권 인정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1999년 법을 개정해서 세율도 50%로 올렸고, 과표도 30%에서 오히려 떨어뜨렸습니다. 기본적으로 부친이 취득 원본(상속 대상이 되는 재산)을 만들었을 때는 근로소득세든 법인세든 이미 소득세를 낸 것입니다. 이 때문에 취득 원본에 대해서까지 과세를 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봅니다.
최영태=당시 사회적 이슈는 왜 세금을 안내고 변칙 증여를 하느냐는 거였습니다. 당시 변칙증여하는 분들이 국민 법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상속했으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중 과세라는 주장과 관련해서는, 미국 세법을 보면 재산이전 특권에 대한 유산세와 재산을 취득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에 대한 과세가 상속세로 나눠져 있습니다. 자본이득 부분과 재산 이전이나 무상취득에 대해 세금을 부여하는 것으로 구분되지요. 하지만 원본에 대해 과세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현석=문제는 현금이 없으므로 상속세를 내려면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상속세 부담 때문에 기업을 팔아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상속이 개시됐을 때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기업을 팔거나 은행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최영태=정말 기업을 몇 대에 걸쳐서 열심히 할 의사도 있다면 공익법인 등 여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 기업들이 좋은 후계자인지 옥석을 가릴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까. 미국에서는 흔히 잘못하면 힐튼가의 상속녀인 패리스 힐튼 꼴 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지금도 연부·연납제도가 있어 공익법인 상속세의 일정부분은 세금을 내면서 승계를 받고, 나머지는 공익법인에 출연을 하면 면제가 됩니다. 지금 시스템은 돼 있는데 중소기업들이 활용을 못합니다. 솔직히 ‘다 싫고 그냥 내 돈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것 아닙니까. 장기적으로 자본이득세로 가더라도 상속세를 폐지해서는 안됩니다. 특권(경영권) 승계 부분에 대해서는 과세해야 합니다.
이현석=결국 상속세의 과세 철학에 관한 문제입니다. 경영권 승계를 ‘특권’으로 보는 밑바탕에는 사회적 평가와 정서가 깔려있습니다. 조세법상 정당한 방법으로 승계가 된다면 특권은 아니지 않습니까. 결론적으로 우선 기업들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으니까 상속세 세율을 내리는 등 개선을 해주고, 할증과세를 폐지하고 가업상속 여건을 완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현행 상속세를 보완하고 장기적 대안으로 자본이득세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최영태=우리나라 창업주들은 맨주먹으로 기업을 키웠다지만 성장하면서 정부의 특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대출 특권이 있거나, 공장을 지으면 가격이 오르는 시대였습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상속세가 유효하다고 봅니다. 기업을 직계가족한테 물려주는데 세금을 안 매긴다면 누가 동의하겠습니까.
토론자
이현석| 대한상의 조사본부장
최영태| 조세개혁센터 소장
〈 전병역·이호준기자 junby@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