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뉴스

***** 교사 10년차, 명문고에서 느낀 우열반의 모순

설경. 2008. 4. 17. 16:18
[[오마이뉴스 김태희 기자]
기자는 경기도 어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다. 경력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근무했었고, 비평준 지역의 이른바 공부 못하는(?) 학교에도 근무해 봤으며, 그 비평준 지역의 최고 명문 고등학교에서도 근무해 보았다.

어제 이명박 정부의 교육규제 개혁(?)에 관한 뉴스를 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동안 금지해왔던 0교시도 부활시키고, 우열반 편성은 물론 서울대반, 연고대반 운영도 가능하게 하며, 서울에서는 원하는 학생만 하고 있는 야간 자율학습의 전면 시행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 등이 들어있었다.

수많은 내용 중 기자는 우열반 문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도, 열등반에 들어갈 학생들이 받을 상처와 같은 감성적 이야기는 빼고 현실적이고 기술적으로 왜 문제가 있는가 하는 부분을 말이다.

우열반을 하면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현재도 우열반은 있다. 수준별 이동 수업이라고 하여 우리 학교에서도 영어, 수학 과목은 성적에 따라 학생들이 이동을 하여 수업을 하고 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한 교실에 영어 능력이 아주 우수한 학생과 중학교 수준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섞여서 수업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듣는 것이 모두의 발전을 위해 좋지 않겠느냐는 논리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상(上)반에 들어간 학생들은 고등학교 수준으로 가르치거나 조금 더 수준 높게 가르치면 된다. 또 이른 바 우수한(?) 학생들만 모여 있으므로 수업 분위기도 아주 차분하고 활기차고 적극적이다. 가르치는 교사도 힘이 나고 재미있으며 매일매일 수업을 하며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하(下)반의 경우는 다르다. 우선 편견에 가득찬 시각으로 보자면 불량한(?) 학생들이 모여 있으므로 수업 분위기가...... 참 어렵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보면 시작종이 울렸지만, 제자리에 앉아있는 학생이 드물고 교사가 교실에 들어왔는데도 여전히 학생들은 떠들며 친구들과 놀고 있다. 자리에 앉아라. 교과서를 꺼내라. 여러 번 말을 하고 몇 분이 흘러야 겨우 분위기를 잡히고 수업을 시작할 수 있다.

수업을 시작하면 학생들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열심히 듣고 필기도 하는 학생(이 학생들이 내 수업을 다 알아 들어서가 아니다. 성적만 나쁠뿐 원래 성실하기 때문에 혼자 수업하는 교사가 불쌍해서 열심히 들어주는 착한 학생들이다), 끊임없이 친구와 떠들거나 휴대폰 등으로 문자를 보내는 등 산만한 학생, 마지막으로 수업 시간에 잠을 청하는 학생으로….

열등반 교사가 잘못 가르치기 때문 아닌가?
교사가 수업을 재미없게 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학생들의 수준에 맞지 않게 수업을 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 역시 항상 나의 재미없는 수업을 반성하고, 재미있게 해 보고자 다양한 농담과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운 몸짓을 준비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더 근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시험, 즉 성적이다.

사실 하(下)반에 들어올 정도의 실력이라면 학생들의 수준은 중학교 수준일 것이다. 그러면 중학교 수준의 내용을 가르치면 아무리 열등반 학생들도 흥미를 가지고 수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실에서 정규 수업 시간에 우리는 그렇게 수업을 할 수가 없다.

상·중·하로 반을 나누더라도 학생들이 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지는 동일한 내용이다. 그러니 약간 차이는 있더라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가르쳐야지 중학교 수준으로 가르친다면 열등반 학생들은 배우지도 않은 내용을 시험지에서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험도 상·중·하로 달리해서 내면 옳지 않겠느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비현실적이다. 상·중·하로 다른 내용을 가르쳐서, 시험문제도 다르게 내면 그 학생들의 성적은 어떻게 합쳐야 할까?

또다른 문제도 있다. 수업을 듣고 나서 학생들이 교사에게 질문하는 것 보다는 동급생에게 질문하여 설명을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열등반을 만들 경우 열등반 학생들은 친구에게 설명을 들을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다. 서로 배우고, 서로 우정을 쌓는 기회 중 하나를 처음 부터 잃어버리는 것이다.

우열반은 우수 학생만을 위한 발상
우열반 편성은 우수학생의 학부모만이 원하는 학급 편성 방식이다. 우수한 내 아이가 조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나쁜 영향 안 받고 공부만 하게 되기를 바라기에 이것을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 학부모의 아이가 열등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면, 그 학부모는 우열반 편성을 반대하게 될 것이다. 공부는 못하지만 착한 내 아이가 다른 거친 아이들 때문에 망가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 우열반을 편성하고 우수반을 가르치게 되면 1년이 행복하다. 학생들은 내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가르칠 의욕도 더 생기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난다. 그러니 우수반 학생들은 당연히 성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열등반을 맡으면 1년이 지옥이 된다. 열심히 가르치려 노력하다가 지쳐서, 교사를 왜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며 학생들이 미워지지만, 또한 저 불쌍한 것들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배우려들지 않으니 사회 나가서 대체 무얼 해 먹고 살게 될까 하는 걱정과 함께 짠한 마음도 든다. 그래도 이 아이들이 더더욱 나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수업하고자 하여도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하면 잠의 세계로 달아나면 끌고 나가기 어렵다. 수업은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등반 학생들도 분명 우리의 제자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동량들이다. 성적을 근본적으로 올려줄 대책이 되지 못하는 우열반 편성으로 상처만 받게 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는 정책이다. 학생들은 섞여서 서로를 보며 배우기도 하고, 자극도 받고, 경쟁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과연 우수 학생 1%를 위하여 우수하지 않은 학생은 모두 포기하는 것이 옳은 정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