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취재일기] 차라리 ‘시험 스트레스’ 택한 일본 공교육
설경.
2008. 4. 23. 15:13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이 시험을 부활시켰다. 시험은 공부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학교 간 경쟁을 일으켜 공교육을 정상화해 보려는 목적에서 부활됐지만 유토리 교육(여유·일본의 평준화 교육)의 대가를 너무 크게 치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부실해지면서 부족한 학습량을 채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전국학력테스트가 부활되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 더욱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저소득층은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못하면서 교육 격차가 더욱 심화돼 왔다는 점이다. 문부과학성의 ‘2006년 중학생 학원비 조사’에 의하면 도쿄에서는 70%가량의 학생이 학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립 중학교에서 학원에 다니지 않는 세대는 28%에 불과하다. 그런데 연수입 400만 엔 미만층에서는 학원에 다니지 않는 비율이 45%로 크게 늘어난다. 공교육이 부실해진 결과 저소득층 자녀들만 교육의 기회를 제대로 못 누리고 있는 것이다.
도쿄도는 이들 저소득층을 위해 연수입 200만 엔(약 2000만원) 이하 저소득 세대의 자녀를 대상으로 8월부터 학원비를 무이자로 빌려주기로 했다. 공교육이 부실해지면서 일본에서도 도시 지역에서 학원에 다니는 것이 일상화된 가운데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자녀들의 교육 격차가 커지는 것을 완화해 보자는 취지다. 대상자는 고입이나 대입을 앞둔 공립학교의 중3 학생 1800명과 고3 학생 900명이다. 중3에게는 연간 15만 엔, 고3에게는 연간 20만 엔이 무이자로 융자될 예정이다.
공교육이 붕괴된 체제에서는 부모 재력이 곧 자녀의 성적과 직결된다. 도쿄도까지 이를 인정하고 학원비를 대주기로 했다. 한국은 이 같은 일본의 교육 정책 실패를 평준화 교육을 통해 답습해 왔다. 아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저소득층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앞섰었다. 일본의 전철을 끝까지 밟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동호 도쿄특파원
[ⓒ 중앙일보 &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