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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박경숙] 클리프의 성채

설경. 2008. 5. 2. 14:21
내가 사는 곳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지역에서도 바다에 접해있다. UC샌디에이고 대학 근처에 둥지를 튼 것은 아들 아이가 그 대학으로 옮겨왔던 작년 가을부터였다. 교포생활권이 다양하게 형성된 LA 인근 도시에서 이 바닷가로 이사할 때 늘 고국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며, 뿌리 내리지 못함이 되레 장점이 되었다.

대학 캠퍼스의 만만찮은 주차비를 절약한다고 아들은 스쿨버스를 타기도 하다가 엄마를 운전사로 부려먹기도 한다. 대부분 바삐 사는 이민자들 사이에서 글만 쓰며 게으르게 살아온 엄마는, 세상의 일꾼이 될 준비를 하는 자기를 위해 그 정도는 서비스를 하리라고 여기는 태도다.

이제는 내 품을 떠나 창공을 비상할 듯, 청춘의 새 한 마리 같은 아들을 자동차에 태우고 캠퍼스로 갈 때면, 나도 덩달아 대학생이 된 것 같다. 수업시간에 맞추어 아들을 학교에 내려줄 즈음, 학교 안은 각 인종의 학생들로 벅적인다. 멋을 부린 여학생이나 펑키 머리를 한 남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소탈한 차림에 뭔가 골똘한 표정의 그들을 보면, 나도 저만한 때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엔 내가 잘 들르는 클리프(Cliff)란 곳이 있다. 절벽이라는 의미 그대로 높은 절벽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막 그곳으로 향하는데,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인 청년과 함께 걷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타 지역에서 방문 온 학생이라 소개하더니, 나에게 학생이냐고 물었다. 놀랄 일이 아닌 것은 이곳은 교육의 나이가 자유로운 까닭이다.

들꽃이 한창인 야생 벌판을 가로질러 절벽으로 가는 오솔길엔 도마뱀이 재빠르게 발밑을 스쳐간다. 절벽 아래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바다엔 잔파도가 밀려오고, 바위에 앉아 심호흡하던 청년은 좀 거리를 둔 오른쪽 절벽 위 아름다운 건물이 호텔이냐고 물었다. 내가 듣기에 그 건물은 미국 대형마켓 체인 '랄프스' 전 사장의 저택이라고 했다. 스페인 풍 성채처럼 보이는 저택 뜰에서 바다로 향한 비탈엔 붉은 보라의 꽃들이 융단처럼 피어 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이담에 저런 집의 주인이 되고 싶다고 한다. 처녀들은 저런 집을 사주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저 아름다운 저택에 단지 한 달쯤 손님으로 머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렇게 대단한 저택의 주인이 된다는 건 집을 위해 그만큼 일상의 시간들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집을 위해 살고 말 것이고.

바위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 청년을 두고, 나는 홀로 들꽃 사이를 걸어본다. 문득 지금은 도시 확장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고향의 들길을 떠올리며, 참 멀리도 와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박경숙(在美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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