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영화, 생각의 보물창고]킬 위드 미

설경. 2008. 5. 14. 20:34
[동아일보]

《제목부터가 소름 끼칩니다. '킬 위드 미(Kill with Me)'. '나와 함께 죽여라'라니, 이런 엽기적인 제목이 어디 또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이 영화가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현실은 제목보다 더 가공할 만합니다.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 집단행위에 너무도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하는 사람들. 이들의 악마적인 모습을 영화는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니까요. 도대체 이런 극악무도하고 인면수심인 살인마들이 누구냐고요? 전기톱을 들고 날뛰는 사이코패스도, 유전자 변이로 태어난 저주스러운 괴수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양심-도덕 사라진 '익명성의 정글'
한순간 남의 사생활 짓밟는 '죽음의 카니발'로
[1] 스토리라인
미국연방수사국(FBI) 여성 사이버 수사관인 '제니퍼'(다이언 레인)는 어느 날 괴이한 인터넷 사이트를 발견합니다. '킬 위드 미 닷 컴(www.killwithme.com)'이란 이 사이트는 고양이를 살해하는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었지요. 무한 복제되는 이 사이트는 폐쇄되지도, 개설자가 추적되지도 않습니다.

아, 이윽고 끔찍한 일이 터집니다. 손발이 묶인 한 남자가 죽어가는 모습이 사이트를 통해 생중계되는 것이지요. 사이트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할수록 이 사람은 더 빨리 죽는다"는 메시지가 뜹니다. 메시지를 본 누리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이트에 접속하고, 남자는 숨집니다.

일주일 만에 또 다른 남자가 이 사이트에 희생물로 등장합니다. 역시 "더 많이 접속할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괴메시지가 뜹니다. FBI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이트 접속을 삼가 달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접속은 오히려 폭증하고, 남자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습니다.

사이트를 개설한 '얼굴 없는 살인마'는 급기야 제니퍼의 남자동료인 '그리핀'(콜린 행크스)까지 이 사이트의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절망에 빠진 제니퍼. 그녀는 희생자들이 모두 한 중년남자의 자살사건과 연관돼 있음을 밝혀내고, 남자의 아들 '오웬'(조지프 크로스)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제니퍼마저 납치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던 오웬. 그 순간 오웬은 제니퍼의 총에 맞습니다. 인터넷으로 이 모습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오웬은 숨을 거둡니다. 그러자 사이트에는 미친 듯이 이런 댓글이 폭주합니다.

'천재가 오늘 죽었네.' '방금 이 장면은 어떻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나요?'
[2] 핵심 콕콕 찌르기
영화는 초반부터 오웬이 범인이란 사실을 공개합니다. 어쩌면 범인의 정체가 오웬임은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엽기적인 연쇄살인을 벌인 보다 근원적인 범인은 오웬이 아니라, 바로 우리 누리꾼들이었으니까요.

제니퍼의 동료 그리핀이 지적한 대로, "인터넷은 정글"입니다. 양심과 도덕심은 증발되고, 욕망과 본능과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뱀처럼 꿈틀거리는 최첨단 정글입니다. 이 정글에 사는 야만인(누리꾼)들은 "더 많이 볼수록 (희생자는) 더 빨리 죽는다"는 메시지를 보고는 도리어 환호성을 지르며 사이트에 접속합니다. 희생자가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숨져가는 '리얼리티 쇼'를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아주 특별한 '재미'를 놓칠 순 없으니까 말이죠.

그렇습니다. 인터넷은 소중한 정보가 공유되는 기회의 바다인 동시에, '살인 놀이'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익명성의 지옥'이기도 합니다. 제니퍼의 말대로 인터넷은 "뉴스를 확인하고, 증권 시세를 보고, 생판 모르는 남의 은밀한 장면을 들여다보고, 기자의 목이 잘리는 순간을 구경하는 곳"입니다. 몰래카메라에 찍힌 남들의 사생활은 경쟁적으로 유포되고, 테러리스트에게 잡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필견(必見)' 동영상이 되어 누리꾼들 사이에 회자됩니다. 그리고 이런 죽음의 카니발은 '인터넷 민주주의'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그들은 이런 살인 아닌 살인을 멈출까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들 자신이 익명성이란 철갑옷을 두르고 있는 한에는 말입니다. 영화는 누리꾼들을 향해 절규하는 FBI 책임자의 말을 빌려 절망적인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살인무기다(We are the murder weapon)."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누군가의 사생활을 훔쳐볼수록 우린 그 누군가를 조금씩 죽여가고 있는 셈입니다. 인터넷이란 정글 속에서 우리의 눈은 치명적인 살해 도구이고, 우리 자신은 가장 잔혹하고 낯 두꺼운 살인범일지 모릅니다. 누리꾼들의 이런 자화상을 범인인 오웬은 서글플 만큼 잔인한 역설법으로 묘사합니다.

"수백만 명의 눈이 모두 같은 장면(살인장면)을 동시에 보고 있어요. 아, 정말 행복한 대가족이죠…."

[3] 뒤집어 생각하기
영화는 인터넷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구경본능이 곧 살인본능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진정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란 것 자체가 인간의 숨길 수 없는 본성인 관음증을 토대로 존재하는 대중예술이기 때문이지요.

극장에서 영화상영이 시작되는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갑자기 조명이 꺼지면서 객석은 칠흑 같은 어둠에 빠집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볼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함입니다. 그래야 스크린 속에서 일어나는 남들(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몰래 훔쳐보는 행위가 주는 쾌감이 극대화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스릴러 영화의 거장인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이창(Rear Window·1954)'이나 '사이코(Psycho·1960)' 같은 영화를 통해 관음증이라는 인간본능에 대한 탐구를 계속했던 겁니다.

사실, 더 큰 아이러니는 이 영화 '킬 위드 미' 자체입니다. '구경의 위험성'을 주장하는 이 상업 영화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구경(관람)'하도록 유혹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니까 말이죠. "더 많이 볼수록 더 빨리 죽는다"는 선정적인 슬로건을 내건 이 영화의 속내엔 "(이 영화를) 더 많이 볼수록 (영화사는) 더 빨리 돈 번다"는 자본주의의 본능적 욕망이 또한 숨어있는 것이지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