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사이드] 광우병과 한국교육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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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이 촛불을 들고 청계광장으로 나왔다. 그 무대 위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미친 소 안 돼, 미친 교육 안 돼." 어느 신문은 이것을 10대들의 쇠고기 반란이라고 했다. 하지만 촛불을 든 아이들 얼굴 하나 하나를 보면서 나는 그걸 교육 반란이라고 생각했다.
미친 소와 미친 교육은 공통점이 많다. 광우병이 소의 뇌를 손상시키는 것처럼 미친 교육도 우리 아이들의 뇌를 무력하게 만든다. 광우병이 소의 생태를 거스르는 동물성 사료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처럼 미친 교육도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발달생태를 거스르며 사육하므로 생긴 결과다.
◆현 교육체계는 뇌의 고문
= 뇌에 구멍이 나 울부짖는 소의 모습 위에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뇌를 고문당하며 고통스러워 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체벌이나 집단따돌림보다 더 심각한 학교의 인권침해는 다름아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뇌의 고문이다. 하루 15시간 좁고 딱딱한 공간에 갇혀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린다.
샌드위치 많이 먹기 대회를 본 적이 있다. 미련한 일이지만 상을 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입에 구겨 넣는다. 그리고 돌아서면 다 토해버린다. 위가 얼마나 학대를 받을까 생각하면 몸서리치어진다. 비유하자면 우리나라 아이들의 뇌가 그 지경이다. 우리의 교육은 마치 무자비한 지식 먹기 경진대회 같은 것이다. 돌아서면 토해버린다. 그리고 뇌는 그만큼 상처를 받는다.
지식의 생명이 채 5년도 안 되는 요즈음 초ㆍ중등학교 아이들에게 낡아빠진 지식을 우겨넣어 먹도록 만들고, 그 결과로 평생토록 더 이상 학습 안 해도 살 수 있는 학력이라는 권력을 손에 쥐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지식경제에서 진정한 경쟁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그 결과가 왕성한 역량으로 전환될 수 있는 지식-학습생태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은 결코 30개월 미만의 살진 소를 만들어 잡아먹는 일이 아니다.
누구나 지금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나서서 '미친 교육 더 이상 안 돼'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누가 이 거대한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까? 모두가 방관자들이다. 광우병에 걸릴 걸 알면서도 조금 더 젖을 짜기 위해 동물성 사료 주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자녀들이 미쳐가는 걸 알면서도 알량한 대학입시 때문에 미친 수레를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곧바로 내 자녀들의 몫이다.
이걸 나는 '지성에 대한 테러'라고 부르고 싶다. 이건 성폭력만큼이나 무서운, 그러나 제도화된 폭력이다. 당신 아이는 지금 학교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교육자들은 도대체 교육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초ㆍ중등학교의 목적은 국가가 정한 일정 수준의 학습에 '모든 학생들'이 안전하게 도달하도록 서비스하는 일이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까지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는 KTX와 같다고 보면 된다. 상대평가와 석차라는 미신에 사로잡혀 아이들을 대전이나 대구쯤에서 마구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또한 자기파괴적 학습이 일상화되도록 조장해서도 안 된다. 학교의 책임은 그런 것이다.
참교육은 내용이 아니라 질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믿는다. 질문은 삶이 지혜를 향하도록 만드는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오래된 속담에 말을 물가로 끌고 올 수는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말에게 물을 마시게 하는 일은 간단하다. 목마르게 하면 된다. 질문은 학습에 목마르도록 하는 일이며 답을 갈구하도록 하는 일이다.
◆질문을 가르치는 것이 참교육
= 학교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교육은 의미 있는 질문을 주는 것이다. 그 답은 아이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 당신 아이의 학교는 당신 자녀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 질문들을 선물해 주고 있는가? 아니면 입을 강제로 벌려서 물을 퍼 넣고 있는가?
적어도 교육문제만큼은 쇠고기 협상처럼 본질을 은폐한 채 군색한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육철학이 없는 것이 새 정부의 교육철학'이라는 인상을 불식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분명하게 교육 청사진을 드러내고 국민의 심판을 기다리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수 /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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