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닭장 투어/촛불-정태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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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2월 미국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 사는 흑인 재봉사 로사 팍스는 퇴근길 버스에서 백인 전용좌석에 앉았다. 당시 앨라배마 주는 흑백 분리에 관한 법이 시행돼 버스 좌석도 흑백이 분리돼 있었다. 자리를 옮겨라는 운전기사의 요구를 거부한 그녀는 법 위반으로 체포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흑인들은 대대적으로 버스타기 거부 운동을 벌였다. 흑백 차별 철폐를 위한 불복종 운동을 편 것이다. 마침내 1년 뒤인 1956년 11월, 미 연방최고법원은 흑백분리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몽고메리 시에 흑백 좌석이 통합된 버스가 달렸음은 물론이다.
역사적 사실로만 인식되던 불복종 운동이 우리 곁에 친숙해진 지 오래다. 사회가 다원화된 탓이다. 지난해에는 시민단체들이 국립공원 앞에서 입장객들에게 문화재관람료를 내지 말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국립공원 입장객에게 일률적으로 징수하는 문화재관람료의 부당성을 알리고 이를 폐지하기 위한 불복종 운동이었다.
지난 2005년에는 네티즌들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 문광위 소속 의원들에게 e-메일로 애국가 MP3 파일을 일제히 선물했다. 자유로운 정보 교환을 가로막는 저작권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불복종 운동의 일환이다.
불복종 운동은 저항권(抵抗權)에 근거한 운동이면서도 적극적인 저항 수단은 동원하지 않는 게 묘미다. 우리나라 헌법은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 등을 언급함으로써 저항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연행이 시작되면서 '닭장 투어'라는 신조어가 인터넷상에 확산되고 있다. 경찰 연행과 조사받는 과정을 '즐거운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집시법 불복종 운동이다. 실제 연행자들이 경찰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등 희희낙락한다고 하니 블랙유머도 이쯤되면 정상급이다. 불복종 운동도 진화한다고나 해야 할까. 이정호 논설위원 lee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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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 정태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