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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6월 2일] 한미 FTA 괴담
설경.
2008. 6. 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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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준 동의 지연 불가피할 듯
미 워싱턴이나 뉴욕 등에 주재하는 한국의 민간 경제ㆍ무역 전문가들은 한미FTA 비준과 관련된 미국의 움직임을 면밀히 추적한 결과, 벌써부터 이 같은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미국 정치권 및 경제계의 동향 파악을 주된 임무의 하나로 삼고 있는 이들이 그렇다고 한미 FTA 반대론자일 리는 없고 오히려 그 반대다.
한미FTA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각자 응분의 노력을 하면서도 미 의회 비준 동의의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은 오로지 유동적 상황에서 우리의 이익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하고 있다. 객관적 정세를 정확히 보고자 한 것이 우선이지 한미FTA에 딴지를 걸거나 훼방을 놓기 위한 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이들의 분석과 전망을 좀더 살펴보면 한국내의 한미FTA 추진세력이 ‘괴담’으로 느낄 만한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부ㆍ여당이 한미FTA를 빨리 발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금과옥조로 삼아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미국에서 접하게 되는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한미FTA의 조기 발효는 정치적으로는 여론을 제압하는 ‘속 시원한 일’이 될 터이고 경제적으로는 ‘반짝 효과’를 불러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빨리 빨리’가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는 검증된 것이 아니라는 반론도 엄연히 존재한다.
최근 미 민주당 대선주자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미FTA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에 대해선 한국 내의 반응이 오히려 괴담 수준이다. 한나라당에선 이러한 반대를 선거전략 차원으로 몰아가는가 하면 “미 의회가 비준동의하지 않으면 부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책임론까지 등장했다.
선거전략이면 본심이 아니어서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를 하는 것인지, 또 임기 말의 힘빠진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인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소리들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한국에서 미 대선주자들의 반대에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사이에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해야 역으로 민주, 공화당 사이에 한미FTA에 대한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있다.
판단 잘못한 세력에도 책임
여기서 의문은 과연 한국의 집권세력들이 눈과 귀가 있다면 어렵지 않게 감지했을 미국의 동향을 정말 몰랐을까, 그래서 쇠고기 시장만 열어주면 올해 내에 미 의회에서 비준동의가 이뤄질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랬다면 그것은 우리 외교 및 협상 당국의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쇠고기 졸속 협상이 몰고 온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생각하면 판단 잘못만으로도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하물며 정부 내 일부 세력이 투명하지 않은 목적으로 부정적 전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알면서도 밀어붙인 것이라면 더욱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 않겠는가.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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