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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설]취임100일, 대통령은 엄중한 상황인식 아래 비상한 결단 내려야

설경. 2008. 6. 3. 10:06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맘 때 국민과 약속한 국가 개혁 과제를 진두에서 지휘하고, 국민들은 대통령의 그 모습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대통령과 국민과 국회 간 행복한 밀월(蜜月) 시기가 바로 이 기간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통령의 오늘은 어떠한가. 거기에 대해선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촛불 시위대가 매일 밤 효자동 로터리에서 청와대 진입을 시도하며 그걸 가로막는 경찰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

촛불 시위대에는 청년·학생·노동자·반미(反美)운동가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의 손을 잡은 주부, 중·고교 학생과 노인네들까지 합류해있다. 시위대의 구호는 하루가 다르게 제목(題目)이 바뀐다. 어느 새 쇠고기 수입반대 플래카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독재타도' '이명박 물러나라'라는 구호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시위 양상은 반(反)정부 정권 퇴진 운동이 돼가는 분위기다.

더 섬뜩한 것은 이 같은 거리의 시위에 가세하지 않은 국민들조차 정권을 바라보는 눈길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광우병 위험을 부풀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세력들의 의도를 못마땅해하면서도 인수위 시절의 혼란과 혼선부터 시작해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장관, 그리고 그밖의 정부 인사에 줄줄이 담긴 정부의 오만과 편향(偏向), 그리고 잇따른 정부 정책 실패가 말해주는 정권의 미숙성에 진작 고개를 흔들어왔다. 결국 이명박 정권은 취임 100일 만에 지지세력들에게선 따돌림을 받은 채 반대세력에게 쫓기는 고립된 정권이 되고 말았다.

이 상황에서 취임 100일을 맞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21.2%로 역대 정권 최저치(最低値)를 기록했다고 덧붙이는 것이 오히려 부질없는 일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완연한 정권 말기 모습이다. 사상(史上) 유례없는 조로(早老) 정권의 증세를 곳곳에서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금 대통령의 엄중한 인식과 비상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은 무엇이 자신과 정권을 여기까지 밀려오게 한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겸허한 반성 위에서 국정 전환의 담대(膽大)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분석과 반성에 한 점의 자기 기만(欺瞞)과 오차(誤差)가 있어서도 안 되며, 결단의 범위와 대상에 어떤 한계와 제한을 미리 설정해서도 안 된다. 정부와 정권을 다시 세우기 위해 정부와 정권 자체를 제외한 모든 것을 던질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이 이렇게 가혹하고 삼엄한 상황에서 이 정권을 만든 사람과 참여한 사람 어느 누구도 자신의 보신(保身)을 정부와 정권의 안보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이제 청와대·정부·집권당 최고위층 전원은 자신의 안위에 대한 집착을 던져버리고 대통령의 결단을 돕는 쪽으로 마음과 행동을 서둘러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취임 100일을 이미 잃어버린 대통령과 정부가 남은 1700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바로 며칠 후 결단의 강도(强度)와 내용에 달려있다. 나라와 국민의 안위가 걸린 일이다. 시간은 촉박하고 상황은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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