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대입논술 가이드]‘PD수첩’ 제재와 촛불인식

설경. 2008. 7. 21. 17:18
촛불집회 초기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그 배후를 괴담에서 찾다가 촛불의 기세가 등등해지자 괴담설을 거두어들이는 듯했다. 말만 번드르르한 소위 추가협상을 하고 나서도 촛불의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촛불이 애초 가지고 있던 순수성이 변질되었다고 규정하고 강경 일변도로 촛불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촛불집회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평가되는 MBC의 PD수첩을 때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PD수첩에 대해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 결정을 내렸다. 언론에 따르면 이런 결정은 이후 이어질 PD수첩 관련 재판에도 영향을 줄 모양이다. 문제가 된 PD수첩이 편집과 전달 과정에서 몇몇 오류를 범했음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오류가 방송된 내용 전체의 진정성을 훼손할 만큼 중대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침소봉대하여 잘못된 방송에 현혹된 시민들이 촛불을 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PD수첩을 비난하는 측은 명백히 '강조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초보적인 논리적 오류를 감내해가면서 PD수첩에 압박을 가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촛불의 배후로 광우병 괴담을 지목했던 초심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현 정부의 인식의 틀에서 비롯한다.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은 이제 와서 초기 촛불의 순수성을 말하지만, PD수첩에 대한 압박으로 그들이 말하는 촛불의 순수성은 말장난에 불과함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현상의 배후에 놓인 본질을 알지 못하는 근시안적 식견이 현 정부를 지배하고 있다. 누구 말대로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보다 작다는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 때문에 두 달이 넘도록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동맹관계 복원이라는 명목으로 맹목적 친미를 넘어선 찬미주의로 일관하여 우리 식탁의 건강주권을 미국에 넘겨주었다는 데에 국민들의 자긍심과 자존심이 크게 손상되었다는 점은 왜 모르는가. 국민들의 재협상 요구에는 안전한 먹거리 못지않게 주권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을 원상회복시키라는 요구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취되지 않는 한 촛불집회는 멈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부는 다시 초심으로 즉 불순한 동기와 괴담으로 인해 촛불집회가 발생했다는 인식으로 회귀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순수성이 단 한 가지 이슈라고 한다면 촛불집회는 처음부터 순수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순수성이 비정치성이라면 촛불집회는 처음부터 순수성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촛불이 설령 괴담에 홀린 청소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들 역시 주권을 지닌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서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존재로서 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제기할 권능을 지닌 엄연한 시민들이다. 청소년들은 광우병이 우려되어 촛불을 들었지만 이를 계기로 많은 것들을 학습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문제점들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이슈는 처음부터 확장되었고, 그 이슈들을 제기하는 순간 촛불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순수성을 가지고 처음과 지금을 달리 규정하려는 것 역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만약 정부 여당이나 보수언론이 말하는 순수성이 자발성이라면, 촛불은 여전히 순수하다.

언론학자들이 주축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벌이고 있는 작금의 행태는 성숙해가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다. 그들은 언론을 정화해서 어리석은 국민들이 거짓에 현혹되지 않도록 돌보고 양육해주어야 할 박정희식 후견민주주의(tutelary democracy)로 한국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오류를 오류라고, 거짓을 거짓이라고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존 S. 밀은 이렇게 말했다.

"의견 발표를 침묵케 하는 데서 발생하는 해악의 특수성은 현세대와 다음세대를 포함한 전인류의 행복을 강탈한다는 사실과,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보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교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만일 그 의견이 틀리다면, 진리가 오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과 더욱 선명한 인상을 상실하게 되는 엄청난 혜택을 잃게 된다."

1 PD수첩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결정을 논하라.
2 촛불의 순수성에 대해 논의해보라.
3 인터넷 의견 발표(댓글 포함)를 제한하는 것의 정당성을 논의해보라.
< 최윤재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 | 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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