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취업재수생 “도서관 너마저…”
설경.
2008. 7. 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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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3동 서대문도서관 일반열람실. ‘백수 2년차’인 박모(여·26)씨가 눈이 빠져라 토익(TOEIC) 참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박씨는 지난해 2월 서울 소재 사립 H대학을 졸업했지만, 대기업 입사에 실패해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그 옆자리에도 같은 처지의 김모(여·26)씨가 ‘2급 한자능력검증시험’ 수험서를 펴놓고 있었다.
박씨는 “대졸 미취업자들이 워낙 많아 오전 8시만 돼도 출입구쪽 말고는 좌석이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시내 시립·구립도서관들의 풍경 속에는 불경기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졸 미취업자들의 비애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아는 사람 눈에 띌 일도 없고, 경제적 부담도 없다는 장점 때문에 미취업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이들 공립도서관 일반열람실이 ‘백수 공부방’처럼 돼버린 것이다.
실제로 이날 둘러본 공립도서관 일반열람실의 자리확보 경쟁은 웬만한 대학도서관 이상이었다.
서대문도서관에서 만난 전모(29)씨는 “일반열람실 좌석이 375개인데, 문을 여는 오전 7시에 나오지 않으면 좋은 자리 찾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전씨는 “일찍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미취업자라고 보면 된다”며 “조금 늦을 때엔 도서관에서 만난 같은 처지의 친구에게 자리 확보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리를 잡지 못해 도서관 밖 벤치에서 대기하며 공부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마포구 서교동 마포평생학습관은 이런 사람들을 위해 150석 규모의 대기실까지 마련했지만, 이날 오후 방문했을 때엔 이곳조차 만석이었다.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 앞뜰 벤치에도 책을 펴든 대기자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 소재 사립 S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임용시험에서 2번 낙방했다는 임모(여·24)씨는 “취직 못한 걸 후배들에게 ‘자랑’하기 싫어 대학도서관엔 못가고, 용돈 타쓰는 형편에 매달 10만원이 넘는 사설 독서실을 이용할 수도 없어 이곳에 와 있다”며 한숨지었다.
갈 곳이 없어 찾아왔지만, 공립도서관에서도 이들은 환영받지 못한다.
최근 도서관들은 ‘공부하는 곳’에서 ‘책 읽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22개 도서관의 일반열람실 좌석은 2006년 9950개에서 2007년 9432개로 줄었다.
올해 개장한 마포 서강도서관과 강서청소년도서관은 아예 일반열람실을 두지 않았다.
마포평생학습관 등 일부 도서관은 책을 읽는 자료열람실로 파고드는 미취업자들을 막기 위해 입구에 ‘이곳에서는 개인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임정환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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