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사설] 되살아나는 보안법 망령

설경. 2008. 8. 28. 11:01



경찰이 그제 원로 경영학자인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와 노동운동가 등 사회주의 노동자연합(사노련) 회원 7명을 긴급 체포했다. 경찰은 이들에게 국가보안법의 이적단체 구성, 찬양·고무, 국가변란 선전·선동 혐의 등을 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보안법에서 ‘적’이라면 대체로 북한을 뜻하는데, 공개단체인 사노련은 강령이나 활동 내용에서 정면으로 북한을 반대하고 비판해 왔다. 진작 폐지됐어야 할 보안법의 낡디낡은 형틀로도 이적이니 찬양·고무니 따위 혐의는 억지스럽다.

경찰은 사노련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점도 문제 삼으려 한다. 소규모 공개단체를 이적으로 몰아, 국민의 거대한 뜻이 모인 촛불집회까지 색깔론으로 덧칠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이는 촛불을 든 국민을 모욕하는 게 된다.

사노련이 사회주의를 표방한 게 이적 행위라는 경찰 주장은 더 경악스럽다. 오 교수는 1980년대부터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고 공개적으로 활동해 왔다. 사노련 결성도 그 연장일 것이다. 경찰이 잘못 이해한 것과 달리, 그런 사회주의자의 자유로운 활동도 보장하는 게 민주주의이고, 헌법 정신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그 정도는 충분히 허용할 수준에 이르렀다. 사회주의를 표방했다는 이유로 잡아가두는 것은 민주화 이전 유신과 5공화국의 공포 정치로 되돌아가는 퇴행이다. 헌법상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명백하게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막무가내식 공안 몰이는 최근 이명박 정부의 강경정책과 무관찮다. 촛불 민심에 주춤했던 이 대통령은 얼마 전부터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강경한 국정 운영을 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남쪽 사회를 이념적으로 분열시키려는 북한의 시도”에 대한 대응책 마련도 강조했다. 이를 전후해 검찰·경찰·기무사·국정원 등의 공안 수사가 경쟁하듯 이어지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실제 간첩 사건도 있겠지만, 촛불집회 연행자를 공안 부서에서 조사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린 군인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등 무리한 시도가 잇따랐다. 자신들의 존재 필요성을 내세우려는 공안기관들의 실적 경쟁이 억울한 ‘빨갱이’도 조작했던 게 우리의 얼룩진 과거사였다. 그런 공안기관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불편해하는 정권의 눈짓을 받고 다시 보안법을 꺼내들어 공안정국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마땅히 중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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