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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기숙형 공립고 성공할까

설경. 2008. 8. 29. 09:38

교육과학기술부는 전국 농ㆍ산ㆍ어촌 지역에 기숙형 공립고 82곳을 선정, 학교 당 평균 38억 원을 지원하고 자율학교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학교들은 냉난방 시설 등을 갖춘 기숙사를 건립하고 2010학년도부터 신입생을 선발하게 된다.

기숙형 공립고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중의 하나로 소외 지역의 교육을 지원하여 도시와의 격차를 줄여나가겠다는 방안이다. 그러나 기숙형 공립고가 생기면 같은 지역 내 다른 고교들과의 교육격차가 심해지고, 대입 준비에 몰두하는 '기숙형 학원'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억누르기'보다 '북돋우기'로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숙형 공립고는 오랜만에 나온 기대할 만한 교육실험이다. 도시에 비해 열악한 농어촌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고,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이 방안은 어느 한 쪽을 억누르거나 발목을 잡음으로써 무리하게 균형을 맞추려 했던 교육정책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하다.

지금까지 대도시의 고교 평준화 정책은 기존의 명문고 집단을 억누르는 역할을 해왔다. 우수한 학생들끼리 좋은 학교에서 경쟁하여 앞서 달려가는 것을 막고, 사교육 열풍으로 부자 집 자녀들이 유리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 평준화의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억누르기'로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여러 가지로 우세인 쪽을 억누르기보다는 열세인 쪽을 북돋아서 경쟁력을 갖게 하는 방안을 더 열심히 찾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이후 등록금이 없어 학교에 못 다니는 학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빈곤층 자녀들의 등록금은 국가가 보조하고 있다. 그러나 등록금 이외의 교육환경 개선 노력은 미흡했다. 서울만 해도 지역적으로 이미 평준화가 깨진 상황인데, 소외지역의 교육을 바꾸려는 대대적인 지원은 없었다. 부자들이 사는 지역에는 신 명문고가 번창하고, 서민층 자녀들이 신 명문고에 접근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준화 정책이 고교를 평준화한다"는 안이한 생각에 갇혀 있었다.

기숙형 공립고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꿈을 꿀 수 있다. 교육 때문에 도시로 떠났던 학생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좋은 학교를 찾아 대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유학하는 학생들도 늘어날 것이다. 농어촌 학교들이 국가의 인재, 지역사회의 인재들을 키워내고 지역발전의 중심이 될 것이다. 꿈이 없어 적막하던 농어촌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사라진 지 오래인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되살아날 것이다. 농어촌의 부모들도 자식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 출세할 수 있다는 꿈을 꿀 것이다. 교육은 공포가 아니라 희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숙형 공립고는 현대시설을 갖춘 기숙사를 지었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실험이 아니다. 기숙형 공립고는 교육과정과 학사운영에서 자율성이 보장되고, 교장 공모제와 교사 초빙제 등을 통해 우수한 교원을 충원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면 생활교육과 전인교육, 안정적인 학습분위기를 기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우수한 인력과 아이디어가 있으면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온갖 부작용만 두드러질 것이다.

창업에 버금가는 준비를 해야이 실험이 성공하려면 정부의 재정 지원 뿐 아니라 민간차원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 기숙형 공립고가 대학 합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고 특기교육이나 취업교육의 명문으로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와 인력을 지원하는 기구가 있어야 한다. 기숙형 공립고는 창업에 버금가는 준비 없이 성공하기 어렵다. 과기부가 예산 이외에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수 많은 프로젝트를 나열하기보다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장명수 본사 고문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