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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중학입시는 유년을 가둔 지옥”
설경.
2008. 9. 2. 21:32
“6학년에 올라가기 하루 전날, 입시를 위해서 구슬과 딱지를 땅에 파묻었어요.”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56)는 1964년에 당시 최고 명문으로 인정받던 경기중학교에 시험을 치르고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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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
황 교수는 입시준비에 가장 치열했던 국민학교 6학년에 진학하기 하루 전날, 구슬과 딱지를 땅에 파묻었다. ‘앞으로 1년은 죽었다’는 생각에 정들었던 구슬과 딱지와는 이별해야 했다.
당시 귀했던 텔레비전도 ‘국민학생 입시’ 앞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가족들은 텔레비전을 벽장 속에 집어넣었다.
‘중학교 입시’는 69년부터 없어졌다. 68년까지 당시 국민학생들은 과열 경쟁과 과외 극성 시대에 ‘공포의 5~6학년’을 살아야 했다. 명문중학교 입학은 ‘학력 엘리베이터’를 타는 첫 관문이었다.
황 교수는 “인생 전체가 걸린 시험처럼 여겨졌고 시험을 못 보면 부모님한테 큰 죄를 짓는 것처럼 생각됐다”며 “12~13살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가 입학할 당시 경기중은 국어·산수 2과목과 ‘턱걸이’ ‘오래달리기’ 등 체력시험을 합격의 기준으로 삼았다. 교과목은 210점, 체력시험은 30점으로 240점 만점이었다.
그해 경기중 입학 커트라인 점수는 229점. 한 문제당 2점이었기 때문에 시험에서 5개 틀리고 체력장에서 1점 감점되면 커트라인에 걸리는 점수였다. 실력이 대단한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체력시험에서 당락이 갈릴 수도 있었다. 뭐든지 잘해야 했다.
황 교수는 6학년에 올라가자마자 집에 철봉을 설치했다. 턱걸이 연습을 하기 위해서였다.
국제중 설립을 두고 중학교 입시 부활 논란이 거세다. 황 교수는 “입시경쟁은 어린 나이에 겪기에는 너무 가혹한 일”이라며 “특히 요즘은 학생 능력보다 주변 여건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아 더욱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됐다”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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