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차준영 칼럼]흑백이 함께 사는 세상인데
설경.
2008. 9. 2. 22:15
리비아의 카다피는 일찍이 흥미로운 예언을 한 바 있다. 30여년 전 집필한 ‘그린 북’을 통해 미래 세계는 흑인이 주도할 것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논거는 간단하다. 흑인 인구가 날로 팽창해 백인보다 훨씬 많아진다는 것이다. 산아 제한이나 가족계획에 구애를 받지 않는 생활의식과 전통 때문이다. 과거 아시아의 황인종이 세계를 이끌었고, 지금은 백인이 식민주의와 함께 세계를 제패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흑인의 역할이 커진다는 견해다. 정밀한 사회과학적 예측은 아니어도 인구의 잠재력을 내다본 통찰력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의 예언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흑인의 출산율이 높긴 해도 질병 등에 의한 사망률 또한 매우 높은 까닭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오히려 아시아계 황인종 인구의 비중이 더욱 커졌다. 이 추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이다. 그럼 카다피의 예언은 빗나간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직은 폐허처럼 남아 있는 차별의 장벽, 특히 백인의 유색인종 차별 의식은 21세기에야말로 말끔히 해체될 운명이니까.
수백년간 유럽 열강의 식민주의에 시달렸던 ‘검은 대륙’ 곳곳이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을 얻었다. 혹독한 차별 정책을 유지하며 소수의 백인이 지배했던 남아공도 1994년부터는 흑인이 이끌어가고 있다. 15세기 말부터 유럽과 남북미에 쇠고랑을 찬 채 끌려갔던 아프리카 흑인이 1천만명이 넘었지만, 그 후예들은 노예 해방 이후 꾸준히 사회적 지위를 높여가고 있다.
‘음지가 양지된다’는 말은 인종적으로도 예외는 아닐 듯싶다. 미국에서도 정치인이나 군인 등으로 존경받는 흑인이 늘어간다. 마침내 흑인 대통령 후보까지 탄생했다. 혁명적인 변화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당내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제압한 것만으로도 미국 선거사에서는 전례 없는 기록이다.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인종이 대체로 백인(비 히스패닉) 67%, 흑인 12%, 히스패닉 14%, 아시아계와 기타 7%이고 보면, 그의 등장은 미국의 정치가 이미 인종차별의 장벽을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1776년 미국 건국 232년 만에, 1863년 노예 해방 1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만일 그가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제치고 당선된다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오랫동안 흑인을 노예로 부려왔던 미국과 유럽 등 전 세계에 흑인 인권 신장의 뚜렷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출신국 배경을 지닌 이민국가 미국의 면모를 온 세계에 각인시키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된 지 40년. 그의 후손들이 오바마 지지를 외치고 있다.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 그 옛날 노예의 자식들이, 그 옛날 노예 주인의 자식들과 함께 형제애라는 테이블에 앉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외쳤고, 그의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능력에 의해 판단되는 나라에서 살게 될 꿈”을 부르짖었으며, “하느님의 자녀들이,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방인, 신교도와 구교도가 손에 손을 잡고 노래할 날”을 꿈꿨던 그의 열망은 마침내 서서히 현실화하고 있다.
온 인류가 형제애로 하나 되기를 꿈꾸는 세상이다. 이 마당에 한국의 종교계와 정치 지도자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독선과 아집에 머물며 남을 비하하고 배척하는 구태를 일삼고 있지 않은가. 피부색이 달라도, 종교가 달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관용은 어디 갔는가. 우리는 과연 얼마나 열린 모습인가. 정부와 공무원의 종교 차별이 얼마나 노골적이었으면 불교계가 온통 들고 일어나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질까. 우리의 의식이 ‘동굴’ 속에 머물러선 안 된다. 넓은 세상으로 나서야 한다. 서로 손잡고 저 환한 세상을 향해….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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