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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여론독과점 낳는 신문·방송 겸영 안된다

설경. 2008. 9. 7. 16:32

방송통신위원회가 신문과 방송을 함께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한 현행 제도를 바꿔 겸영(兼營)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보고를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세계적 수준의 미디어가 출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독려했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이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실행 여부를 검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출범 4개월 만에 이뤄진 방통위의 첫 업무보고에서 사회적 공론화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책 방향이라며 거침없이 내놓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신문·방송의 겸영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단숨에 뚝딱 해치우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미국에서도 연방통신위원회(FCC)가 격론 끝에 겸영을 허용키로 결정했으나 상원에서 이를 무효화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겸영을 실질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신문·방송 겸영에 부정적인 이유는 한마디로 여론 독과점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금이 미디어간 경계가 엷어지는 융합의 시대라고 하지만,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는 여론마저 한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인식이 있는 것이다. 매체의 특성이 다른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하는 자본이 나오게 되면 여론의 다양성은 악화되고, 이는 사회의 경직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헌법재판소가 2006년 신문법의 일부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도 겸영금지조항에 대해서는 합헌으로 판단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지금 한국의 상황은 그 위험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크다. 신문시장을 과점하는 3개 보수신문이 방송 진출을 꿈꾸고 있고, 정권이 대선 보은(報恩) 차원에서 선물을 주려 한다는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규제 완화라는 명분은 허울일 뿐 족벌 신문과 대기업에 방송사업권을 주려는 속셈 아니냐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고 현실화된다면 신문과 방송 모두 친정부 일색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정권의 언론 장악 계획이 완료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태는 국가의 장래를 위해 꼭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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