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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정원, ‘오욕의 역사’ 되풀이하려는가

설경. 2008. 9. 7. 16:36

국정원의 ‘과거 회귀’ 움직임이 노골화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국정원이 수사상 필요할 경우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고,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으로 이동통신회사가 감청 설비를 갖추고 휴대전화 사용 내역 등을 보관토록 해 법원 영장을 받은 수사기관이 감청할 수 있도록 하고, 국정원법을 고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이 현실화하면 수사기관의 의지에 따라 이동통신 가입자의 통화 내용과 시각, 위치 등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게 된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끊임없이 감시하는 ‘빅브러더’의 세상을 연상케 한다. 휴대전화와 메신저 등 첨단기기를 통한 범죄의 통신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는 게 명분이라지만 한나라당의 ‘정권 안보’ 욕구와 무소불위의 ‘정보 권력’을 향유했던 국정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의기투합으로 읽히는 이유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국가정보 및 국내 안보 정보(대공·대 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배포 등 구체적으로 적시된 직무 조항 말미에 ‘~등’을 붙인다는 국정원법 개정 발상이다. 정보 활동 대상이나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1994년 정보기관의 환골탈태를 다짐하며 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한 안기부법 무력화로 정치 개입의 우려를 키울 뿐이다. 더구나 시점이 촛불시위 이후 조성된 공안정국과 맞물리면서 국정원이 공안 도구화를 자처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사고 있는 처지다.

비판 여론이 일자 국정원은 “확정된 사안이 아니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충분한 여론 수렴을 거칠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얼마 전부터 국정원의 기능 강화를 공공연히 설파하고 있는 데다 현재 172석으로 절대 과반을 확보한 한나라당의 의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의례적 해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국정원은 ‘정권 안보’ 덫에 걸려 중앙정보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던 오욕의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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