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주어진 분석틀 쓰되 배경지식 활용하라

설경. 2008. 9. 8. 17:42

[한겨레]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 교과서 / 11. 조건비교형

■ 기출문제유형 2 - 숭실대 2008학년도 정시 [난이도 수준-중2~고1]

< 논제 > 제시문 (A), (B)를 참조하여 아래 글 (가), (나), (다)의 서술 형식에서 비롯된 효과를 비교·대조하시오.

(A)

서사(narrative)의 두 가지 영역인 역사(history)와 문학(fiction)은 모두가 시간의 단일성을 전제로 한다. 역사와 문학은 서로를 모방한다. 문학이 무언가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치 그것이 일어난 듯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과거 시제는 단순히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준(準)과거이며, 그것은 내포된 화자의 목소리로 볼 때 과거의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허구화되듯이, '지나간 듯이' 이야기함으로써 허구는 역사화된다. 역사는 실제 일어났던 일을 재현한다고 하지만 있었던 그대로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마치 그렇게 일어났던 것처럼 그려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상상력이 개입한다. 다시 말해 역사는 허구의 방식을 빌려온다. 그러나 단순히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재현적 기능, 즉 과거를 기억하면서 생길 수 있는 역사의 빈틈을 메우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야기를 통해 역사가 허구화되듯이, '지나간 듯이' 이야기함으로써 허구는 역사화되는 것이다. 현실이 갖는 풍부한 의미와 잠재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역사나 허구 어느 한쪽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둘이 서로 교차하면서 가리키는 것이 현실이다. 마치 그런 일이 일어난 듯이, 그렇게 일어난 듯이 다시 그려보는 것이다.

(B)

민주화시대의 한국사회에서 '기억'이라는 용어는 단지 과거지향적인 회상을 넘어 '현재진행형'인 '진실'의 기표로서 사용되고 있다. 이때 기억은 망각과 반비례 관계에 놓인다. '기억의 진실'이 확보될수록 망각의 허위는 설 곳을 잃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민주화시대의 시각으로 볼 때, 진정한 '기억의 진실'은 오로지 민중에게 있다. 민중들은 현재를 지배하는 승자의 기억인 이른바 '공식기억'과는 대별되는 자신들의 고유한 '사적(私的) 기억'을 지니고 있다. 공식기억이란 사실 제도화된 망각에 가깝다. 주로 '역사'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것은, 지배질서의 정당화와 영속화를 위해 선별된 '관제기억'일 뿐이며 역사교과서나 기념관 등 다양한 공전(公的) 기구들을 통해 관리되고 유통된다. 이에 반하여, 민중들의 사적 기억은 자신의 적절한 대변자를 찾지 못하기에 보편성을 띠지 못하고 파편적이며, 그늘에 가려 있다. 그러나 민중들이 새로운 정치적 환경에 고무될 때, 그들이 품은 기억의 진실은 지배세력의 공식기억에 도전하는 이른바 '대항기억'으로 정치화될 수 있다. 공식기억과 대항기억, 보다 극명하게 말하자면, 역사와 기억 간의 투쟁은 일견 과거의 해석을 놓고 벌이는 고답적 논쟁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현재적 정치투쟁이다.

(가)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기습 남침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7월 20일 대전을 함락시키고, 7월 말에는 낙동강까지 진출하였다. 한편, 전쟁이 시작되자 유엔의 결의에 따라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이 창설되어 전쟁에 개입하였다. 국군과 유엔군은 8월 초부터 낙동강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 국군과 유엔군은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곧 이어 38도선을 돌파하였다. 계속 북한으로 진격하여 원산과 평양을 함락시키고, 10월 말에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압록 강변까지 진출하였다. (중략)

그러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군사분계선의 설정, 포로 송환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둘러싸고 회담 당사자들 사이에 의견의 대립이 계속되어 쉽게 타결을 보지 못하였다. 결국 협상이 시작된 지 2년이나 지난 1953년 7월에야 휴전이 성립되었다. ― 김한종 외, <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 , 금성출판사, 2007.

(나)

그날의 아침 배는 여섯시 십오 분에 닿았다. 눈바람을 무릅쓰고 얼음판 위에서 밤을 새운 군중들은 배가 부두에 와 닿는 것을 보자 갑자기 이성을 잃은 것처럼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곤두박질을 하듯 부두 위로 쏟아져나갔다. 부두 위는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공포가 발사되고, 호각이 깨어지고 동아줄이 쳐지고 하여, 일단 혼란은 멎었으나 그와 동시, 이번에는 또, 그 혼란 속에 아이를 잃어버린 어머니, 쌀자루를 떨어뜨린 남편, 옷보퉁이가 바뀐 딸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서로 부르고, 찾고, 꾸짖는 소리로 부두가 떠내려가는 듯했다. 그들은 모두 이 배를 타지 못하면 그대로 죽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이 배 다음엔 다시 배가 없을는지도 모르고, 다시 배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 많은 사람들이 언제 다 탈 수 있으며, 또 십오, 십육 양일에 걸쳐 두 번이나 공산군이 우리의 방위선을 돌파하고 흥남에 침투하여 들는지 모를 일이라는 비관적인 군중심리가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함께 그들을 휩쓰는 것이었다. (중략)

― 김동리, < 흥남철수 > , < 현대문학 > , 1955. 1.
(다)

"군대, 경찰들 그 사람 모두 숙청시킨 거야. 가족 모두 죽이는 것을 숙청이라고 하거든. 그게 인민군들이 그런 게 아니고 다 아는 사람이거든. 근데, 또 사람들이 그리 안하면 자기들이 죽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 그래 이놈의 세상에 아버지하고 아들 사이에 말을 제대로 못해서 어른들이 칼날 위에 선 세상이라고 했지. 이 사람들이 뭐 아버지동무, 뭔 동무 해가면서 뭐 자기들 아버지나 식구들의 불손한 행동을 당에 신고하면 아주 열성분자로 치켜세워 주거든."

"이 전쟁은 명목 없는 무모한 싸움이야. 그러니 너는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라. 네가 비겁한 소리를 듣더라도 병신인 체 바보인 체하고 목숨을 보전하여라. 그러다가 미군과 전투를 하게 되면 투항을 해라. 결코 국군부대에는 투항을 하지 마라.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현재의 군인들이 나를 비난할지 몰라도 그 무렵 국군의 질은 낮았어. 국군은 위험하다.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 투항하면 죽이고 말지도 몰라. 미군은 국제법을 지킬 거야. 그러니 투항하는 사람에게 관대할 거다. 나는 국군에 대한 신뢰감이 없었으니까. 전체적으로 사기는 떨어져 있었고, 규율도 없고, 보급품도 없고 그러니 투항자 처리를 못할 듯한 생각이 들어. 귀찮으니까 총살할 염려가 있어." ― 김동춘, < 전쟁과 사회 > , 돌베개, 2000. 중의 증언

■ 해결 전략

제시문에서 다루는 사건은 6·25전쟁이다. 제시문의 서술 형식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가)는 6·25전쟁에 대한 역사 교과서의 서술 형식이다. 역사 서술은 과거의 사실들을 객관적으로 나열함으로써 기록의 신뢰성을 높인다. (나)는 김동리의 소설 '흥남철수'의 일부분으로, 피란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과거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효과를 보여준다. 비록 허구의 서술 형식이지만 전쟁 과정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는 체험자들의 증언이다. 인민군의 잔인한 숙청 사실을 수긍하는 반면 국군이 투항하는 사람을 총살해 버릴 수도 있다고 했다. 이는 (가)의 공식기억과는 다른 민중의 기억이다.

비교 내용을 토대로 서술 형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시문 (가)는 개관적 증거를 토대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있으나, (나)와 (다)는 문학적 상상력과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역사적 사실에서 간과된 현실을 복원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나)가 인민군의 폭정을 담고 있다면, (다)는 국군을 비판하고 있다. 즉, (나)와 (다)는 각각 우파와 좌파라는 정치적 측면에서 대조를 보이고 있다.

■ 자료 검색

6·25 '흥남철수' 작전서 1만4천명 구한 러니

로버트 러니

"진짜 영웅은 스스로를 구한 피난민입니다"
"그날의 진정한 영웅은 구조대원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탈출한 북쪽 피난민들입니다."
1950년 12월22일, 7600t급 화물선 빅토리호는 중공군이 밀려오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피난민 1만4천명의 피난민을 싣고 흥남항을 출발했다. 부산항에 다다랐지만 정박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25일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물과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극한상황에서 기뢰를 뚫고 거제도에 도착하기까지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었다. 오히려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흥남 철수 작전을 도운 공로로 그는 1958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과 60년 미국에서 '용감한 배' 표창을 받았다. 그는 또 2004년 9월 빅토리호가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출한 세계기록'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는 데 앞장섰다.

- < 한겨레 > 2006년 2월24일치.
코맥 매카시의 〈로드〉

코맥 매카시는 코언 형제의 영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열 번째 소설인 < 로드 > 는 미국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2007년 퓰리처상을 받았으며, 인터넷서점 아마존과 < 뉴욕타임스 > 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중략)

"그 무렵 비축해두었던 식량은 모두 바닥이 났고 온 땅에 살인이 만연했다. 세상은 곧 부모 눈앞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도시 전체를 시커먼 약탈자들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다. 약탈자들은 폐허에서 굴을 뚫고 돌아다니다 잡석 더미에서 눈과 이만 새하얗게 빛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문장에서 엿볼 수 있는 대로 < 로드 > 가 보여주는 세계는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의 세계보다 훨씬 더 암울하다. 끝없는 어둠과 절망이 광대한 사막처럼 펼쳐져 있다. 기독교 < 성서 > 의 묵시록과 창세기를 혼합해 암회색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 세계다. 모든 생명체가 죽고 오직 소수의 인간 생존자만이 목숨을 지키려 분투한다. 멸망 이후의 자연상태 혹은 전쟁상태가 이 소설이 그려보여주는 세계다. 주인공 남자와 어린 아들은 그 황폐의 한복판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간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참혹한 세계에서 아이는 생존자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둘로 나눈다. 그리고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인가요." 야수의 차원으로 떨어지지 않고 인간성의 마지막 한 방울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이 소설을 밀고가는 힘이다.

9·11 사건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이 소설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날 지은이는 노인이 되어 얻은 어린 아들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이런 가혹한 상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소설의 '길'은 끝이 없는 절망의 외길이지만, 지은이는 그 암흑 속에서도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희망의 불빛을 찾아내려 한다. "넌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못 가요."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어디 있죠?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 < 한겨레 > , 2008년 8월29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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