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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허승호]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위기

설경. 2008. 9. 17. 10:32

[동아일보]

1929년 10월 증시의 투기 거품이 꺼지면서 미국 주가가 대폭락했다. 1930년엔 농업 등 실물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밀턴 프리드먼이 이름 붙인 ‘공포의 전염(contagion of fear)’으로 번져갔다. 은행을 믿지 못한 예금자들이 돈을 찾으러 은행에 달려간 것. 뱅크 런(bank run)이다. 이제 심리적 공황(panic)으로 건실한 은행마저 도산하는 ‘대공황’으로 발전했다.

새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선언하며 1933년 3월 ‘은행 일시휴업’을 명령함으로써 금융 공황의 불길은 겨우 잡혔다. 미국 내 상업은행의 3분의 1 이상이 이미 도산해버렸지만….

그 후 미국에서 금융 공황은 없었다. 경제학자들이 대공황의 교훈을 철저히 연구해 중앙은행의 역할과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금융업에 대한 건전성 규제가 강화된 덕분이었다.

80년이 지난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 앞에 많은 사람들이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며 걱정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가 “1929년보다는 덜 심각하다”고 말할 정도다. 리먼브러더스는 파산 절차에 들어갔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인수하기로 했다. 베어스턴스, 프레디맥, 패니메이의 운명은 앞서 결정됐다. 이제 남은 대형 부실은 AIG보험과 워싱턴뮤추얼 정도다. 각각 미국 최대의 보험사 및 저축대부(S&L)조합이다.

S&L…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업종이다. 1980년대 초 미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로 S&L은 새로운 위험 업무를 취급할 수 있게 됐다. S&L이 부실해지자 정부는 퇴출시키는 대신 자기자본 규제를 완화해줬다. S&L은 더 공격적으로 투자했고 부실은 심화됐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경제학자 에드워드 케인은 이를 ‘움직이는 시체’라는 뜻으로 ‘좀비 S&L’이라고 빈정댔다.

1997년 한국 외환위기와 기막히게 닮은꼴이다.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종합금융사의 외환 차입-대출 만기 불일치로 인한 지불 불능이었다. 외환 자유화로 종금사의 업무영역이 넓어졌지만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던 것. 당시 우리도 망하지 않은 부실업체를 ‘강시’라고 불렀다.

이처럼 금융위기는 금융업체가 만든 자산 거품 때문에 스스로 잉태된다. 실물경기의 후퇴는 위기를 촉발시킬 뿐이다. 이는 금융기업이 ‘고위험-고수익’을 최대한 떠안으면서 갖은 기법을 동원해 위험을 전가·우회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한 위험에 노출돼 부실로 치달을 개연성을 언제든 내포하고 있다.

이를 막는 장치가 금융규제다. 프레드릭 미시킨은 저서 ‘화폐와 금융’에서 “은행 위기는 부적절한 금융규제 완화와 부실은행의 파산을 미루고 예금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는 규제관용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썼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다급한 일은 눈앞의 위기관리다. 하지만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다 보면 이번 사태가 던지는 과제가 하나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동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되겠다는 한국에 금융자유화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나 올바로 다루지 못하면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다. 어떤 경제정책이든 양날의 칼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 격언이 그래서 있나 보다.

허승호 경제부장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