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사설]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생각할 때

설경. 2008. 9. 19. 13:31

월가 쓰나미가 글로벌 금융시장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어제 중국 홍콩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는 동반 급락세를 보였다. 전날 미국과 유럽 증시 폭락의 충격파가 고스란히 밀려온 것이다.

글로벌 거대 금융사들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어 언제 위기가 진정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가장 안전한 투자 대상의 하나인 머니마켓펀드까지 원금 손실이 날 지경이어서 대규모 환매사태마저 우려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안전지대가 될 수는 없다. 어제 코스피는 현금 유동성 확보에 혈안이 된 외국인투자자들이 팔자에 나선 가운데 1400선 아래로 다시 주저앉았고 원화가치도 급락세로 돌아섰다. 우리의 주요 수출시장이 한결같이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미 가시화된 수출 둔화세가 금세 반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금융과 실물경제, 수출과 내수 부문이 함께 침체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월가의 부실이 대부분 드러나 위기의 정점을 지났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진단을 내리는 전문가도 없지 않지만 현 단계에서 막연한 낙관은 금물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위기상황일수록 정부와 기업, 개인 모두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생각하면서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굳이 불필요한 비관론을 확산시킬 필요는 없지만 가능한 모든 사태 발전을 상정하고 단계별 대응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위기의 실체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상황이 악화될 경우 신속하게 진화에 나설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최악의 위기는 없을 것'이라며 기업과 가계를 안심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기동력 있는 위기대응팀과 명확한 컨트롤타워가 보이지 않는 마당에 글로벌 금융시장의 쓰나미가 덮쳐 오면 큰일이다.

기업과 가계는 부실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들기 전에 스스로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언젠가 정부가 구제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만 갖고 무작정 버티는 전략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지나친 빚을 안고 고위험ㆍ고수익 전략을 추구해온 기업과 가계는 더 늦기 전에 무엇이 최선의 생존전략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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