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원,국제중

국제중 진원지 ‘청심’…1회 입학생 100명중 27명 떠나

설경. 2008. 10. 15. 13:40


[한겨레] 입시 과목 위주 교육…강사 부족 영어몰입 부실

미 교과서 구입·기숙사 등 연간 학비 1700여만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국제중 설립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기 가평 청심국제중에 있다. 공 교육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청심국제중으로 서울의 우수 인재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며 “서울에서도 국제중을 설립해 특성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고 밝혀 왔다. 2006년 문을 연 청심국제중은 2009학년도 일반전형 경쟁률이 22 대 1에 이를 만큼 인기가 높다. 합격생 가운데 상당수는 토익 점수가 900점 이상이며 서울지역에는 청심국제중 전문 입시학원도 성업 중이다. <한겨레>는 국제중 열풍의 진원지인 청심국제중 학부모와 전직 교사 등에게서 실제 청심국제중에서는 어떻게 교육이 이뤄지는지 들어봤다. 취재 결과, ‘글로벌 인재를 양성한다’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게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으며, 영어 강의를 할 수 있는 교사의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재 3학년인 1회 입학생 100명 가운데 학교를 그만둔 학생이 27명에 이르렀다.

■ 학부모 입시교육 요구 여전 특수목적고 등 상급 학교 진학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의 요구에 휘둘려 학교가 ‘국제적 감각을 갖춘 인재 양성’이라는 애초의 교육목표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었다.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청심국제중의 모든 학생들은 밤 10시를 넘어서까지 의무적으로 자율학습을 해야 한다. 최근까지 이 학교에서 근무했던 전직 교사 박준호(가명)씨는 “교사들은 ‘어린 학생들이니 9시까지만 자율학습을 하게 하자’는 의견을 냈지만 공부를 더 시켜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요청 때문에 시간이 연장됐다”고 말했다. 그는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귀가하도록 했던 애초의 학교 방침도 주말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요구로 매주 귀가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일반 학교와 마찬가지로 방과후 학교 역시 국어·논술·수학 등 입시 관련 과목 위주로 진행된다. 한 2학년 학부모는 “청심중에 입학시킨 것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아이를 보니 이 학교가 특별한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며 “뛰어난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수월하게 특목고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털어놨다. 학교 쪽은 “학생들을 매주 내보내기로 한 것은 어린 학생들인 만큼 자주 집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지 학원에 갈 수 있게 하려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며 “세부적인 학교 운영에 대해서는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 준비 안 된 영어몰입 교육 청심국제중은 국어와 국사, 중국어를 뺀 모든 과목을 미국 사립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를 이용해 영어로 진행한다고 홍보해 왔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실제로는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강사 수급에 어려움이 많아 영어로 하는 수업은 수학·과학 등 일부 과목에 한해 이뤄지고 있다.


한 학부모는 “다른 과목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 수업도 강사가 충분치 않아 두 학급 학생 50명을 묶어 수업한 적이 있었을 정도”라며 “외부에 알려진 것처럼 대부분의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도 “아이가 입학할 때 기대했던 것보다는 영어수업 여건이 크게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영어로 강의할 수 있는 강사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미국 교과서 사용에도 어려움이 많다”며 “1학년의 경우 국내 사회교과서와 미국의 사회교과서 <시빅스 인 아메리카>를 함께 쓰고 있는데, 미국의 정치·사회제도에 대해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가 없어 사실상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심국제중 관계자는 “영어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 수급이 쉽지 않아 교과 운영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수업 여건 개선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 연간 학비 1700여만원 학비도 알려진 것보다 비싸다. 1년 수업료 436만4천원(입학금 포함) 외에도 매달 70만원씩 내는 기숙사비, 방과후 학교와 ‘1인 1악기’ 프로그램 비용, 교복과 미국 교과서 구입 비용, 수학여행비 등을 합치면 1년에 들어가는 돈이 약 1700만원에 이른다. 서울 지역의 한 학부모는 “아이가 기숙사에 있어 주중에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청심국제중은 통일교 재단의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 이 정도나마 운영되지만 서울에 설립되는 국제중의 경우 현실적인 어려움이 훨씬 클 것”이라며 “국제중이 내거는 특성화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을 갖추는 일도 문제지만, 명문대 진학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한국 교육풍토에서 국제중은 사실상의 입시 명문학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민영 기자


minyoung@hani.co.kr


캐나다서 편입했다 전학한 송군

“유학을 경험한 학생들일수록 국제중 생활을 못 견뎌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캐나다의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다 청심국제중에 편입했던 송아무개(15)군은 청심국제중의 경쟁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도 안 돼 일반계 중학교로 전학했다. 어머니 박아무개씨는 “일반 중학교보다 더한 입시교육이 이뤄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아이가 주말에 집에 와서 ‘다른 아이들이 기숙사 강제 소등시간(밤 12시) 넘어서까지 불을 켜고 공부를 하는데 혼자 잘 수도 없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경쟁적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어린 나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건강도 나빠졌고, 주말 내내 집에서 쓰러져 자다 학교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됐어요.”

박씨는 학부모들이 특목고 입시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보니 학교 운영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의 경우 입시에 도움이 되는 과목들로 채워 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영어로 수업할 필요 없으니 수학·과학 잘 가르치는 교사들로 채워 달라는 요구도 많았고요.”

박씨는 “아이의 학업 스트레스가 심하다며 걱정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대부분 ‘조금만 참고 버티자’는 식이었고, 오히려 불안감에 주말이면 더 적극적으로 학원에 보내는 부모들도 많았다”고 했다. 정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