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사설,칼럼)
[김세형 칼럼]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de)
설경.
2008. 10. 17. 14:13
![]() |
그러니 월가 때문에 맨날 주눅들었던 유럽 국가들은 어떻겠는가. 니(미국)가 피눈물(schaden)을 흘리니 나(프랑스ㆍ독일)는 정말 고소해(freude) 죽겠어. 쌤통이얌.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고통(샤덴)+기쁨(프로이데). 인간심리의 원초적 본능을 담은 정반대의 두 단어를 합산한 이 기묘한 낱말은 요즘 유럽과 미국의 매스컴에 가장 자주 등장한다.
월가가 첨단 금융공학으로 이 세상을 떡 주무르듯 한다고, 그리하여 미국을 먹여살리는 전위대라고 큰소리칠 때 우리(유럽 국가)가 뭐랬나. 조심하라고 그랬지. 시장은 항상 옳고 자유방임주의가 최고라고?(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탐욕이 선(善)이라고?(슈타인브뤽 독일 재무장관)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거구 금융은 적당한 규제가 필요한 거야! 프랑스, 독일은 미국에 삿대질하느라 아주 신바람이 나버렸다.
샤덴프로이데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감정. 이상하게도 환난과 독도가 어우러지는 묘한 핸디캡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조짐이 있을 무렵 일본 총리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망언했다. YS는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폭발했고 직후 환난이 터졌다. 일본은 한국이 "달러 좀 꿔달라"는 SOS에 모른 척했다. 올해도 일본 총리 후쿠다의 독도 발언 때문에 한국인과 일본인은 마음 속으로 감정적인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한국이 외환 크런치로 몰리자 MB가 "한ㆍ중ㆍ일 금융공조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어도 일본 측은 콧방귀를 뀌었다. 속으로 외쳤을 거다. "샤덴프로이데"라고.
2008년 10월은 역사에 뭐라고 기록될까. 금융공황? 아마 그렇게쯤 되지 않을까 싶다. 한때 우등생이었던 국가들이 줄줄이 망신을 당했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 파키스탄, 포르투갈도 이상하게 됐고 러시아의 장밋빛 환상도 구겨져 가고 있다. 미국이 크게 망신당하고 한국도 약간 창피를 당하고 뭐, 그랬다. 그러면서 이웃의 불행은 나의 축복인 듯 '샤덴프로이데'라며 나직이 외친다.
가장 아름다운 감정은 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해 주는 거다. SOS 칠 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거다. 그리고 진정 남을 비웃을 때 뭐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식이 돼선 곤란하지 않을까. 지금 유럽을 보면 그들이 미국을 냉소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유럽도 충분히 부상을 당했다. 유럽, 미국, 일본이 동시에 구제 조치를 내야 할 정도로 함께 내동댕이쳐진 것. 이제 누가 먼저 일어나느냐의 게임이다.
유럽인과 미국인. 정반대인 그들 중 누가 먼저 회복될까. 그것은 몸에 흐르는 승부사 기질 DNA가 결정할 것이다. 현재 양자의 스타일은 너무 딴판이다. 유럽인은 직장을 권리이자 행복 입장권으로 생각한다. 미국인은 인생의 기복, 심지어 파산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은 모든 약자는 국가의 '보호' 대상이다. 농민, 학교, 기업, 취약산업(예컨대 이탈리아의 직물) 모두가 어린애다. 미국은 개방과 경쟁이다. 유럽은 유능한 인재들의 이민을 막고 대학은 평준화다. 미국의 A급 대학 교수의 3분의 1은 유럽인이고 유럽의 우수학생은 미국으로 넘어온다. 유럽인은 휴가를 6주간 가고 60이 넘으면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은 보수만 많이 주면 일을 더하고 은퇴란 내 사전에 없다고 말한다. 유럽인은 실업자와 가난을 보면 가슴 아파하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큰 정부). 부자가 더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기회는 공평하므로 자신 스스로 책임져야 하고 세금 인상은 질색이다. 유럽인은 평생 한 직장만 다닌다. 미국인은 직장이동은 능력과 보수 증가의 발현으로 간주한다. 이상은 '유럽의 미래'란 책에서 발췌한 대서양 양안인들의 특성 몇 가지를 열거한 것이다. 저자는 하버드대 석좌교수인 알베르토 알리시나인데 이탈리아 출신이다.
자고로 유럽인들은 산업화 단계에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아 계급은 뛰어넘을 수 없다는 숙명론에 푹 젖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100년 이상 미국을 벤치마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미국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모든 것을 형해화해버린 다음 뚝딱 다시 만들어 낸다. 1980년대 일본에 질 기미가 보일 때 그랬다. 이번 금융위기 이후 3~4년이 경과하면 미국과 유럽은 누가 웃을까? 중국은 "전 세계 좋은 자산은 전부 우리 수중에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숨어서 웃는단다. 한국은 어떨까. 이제 경주는 시작됐다. 최후의 샤덴프로이데는 누가 말할까.
[편집국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