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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손수호] 오바마이즘과 스프링필드

설경. 2008. 11. 5. 19:40

일리노이주는 링컨의 고장이다. 닉네임이 'Land of Lincoln'이다. 자동차는 아예 링컨 얼굴을 새긴 번호판을 달고 다닌다. 켄터키에서 태어났지만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미래의 꿈을 키웠고 1860년 백악관에 입성하기까지 17년간 살았다. 링컨의 정치적 본향인 셈이다. 여기에는 그의 2층짜리 집은 물론 이웃집 헛간까지 사들여 '링컨 타운'을 꾸며놓았다. 지금은 인구 10만의 일리노이 주도(州都)일 뿐이지만.

지난해 2월10일, 링컨처럼 키 크고 비쩍 마른 정치인 버락 오바마가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으로 민주당 대통령선거후보 경선에 나서면서 첫 연설장소로 시카고 대신 스프링필드를 선택한 것이다. 147년 전, 같은 장소에서 후보수락 연설을 한 뒤 대통령으로 성공한 링컨을 닮고 싶었기에 그러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사자후를 토했다. '변화의 정치를 위하여'라는 주제를 내건 그는 "승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는 이상을 전파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며 "이 땅에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맞아들이자"고 호소했다. 오바마는 올 8월, 조 바이든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소개하는 장소로도 스프링필드를 찍었다. 이후 '검은 링컨' 이미지를 내세운 그의 담대한 선거 캠페인은 파죽지세로 대륙을 휘감더니 마침내 백악관의 독수리 문장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자유와 통합의 사자후 뿜어낸 현장…울림은 대륙과 해양을 거쳐 다시 이 ‘링컨의 도시’로 수렴될 것”

그의 가치는 무엇보다 삶의 굴곡을 내면화했다는 점에서 빛났다. 기회 있을 때마다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담담하게 밝혔다. 그에게는 캔자스 출신 어머니와 케냐인 아버지, 인도네시아인 의붓아버지가 있었다. 그로 인해 하와이와 인도네시아에서 자랐고, LA와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시카고에 정착했으니 파란의 노마드적 여정이다. 그 와중에 남들이 '오바마'를 발음 못해 '앨라배마' 혹은 '요마마'로 부르거나, '버락'이 우스꽝스럽다고 놀려도 자신의 한 부분으로 수용했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는 "할아버지는 영국인 가정의 조리사이자 하인으로 일했고, 아내 미셸의 아버지는 시카고의 (빈민가) 사우스사이드에 살면서 정수공장에 다녔다"며 한미한 가족사를 공개했다.

지난 3월에는 선거전략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흑백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과거는 죽어 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며 노예해방정신이 완성되지 않은 현실을 질타한 것이다. 2006년 나이로비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케냐는 위대한 역사를 가졌지만, 스스로도 맡은 바를 다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한국을 예로 들었다. "1960년대 초, 케냐가 독립을 성취하는 사이에 국민총생산은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는 케냐보다 40배나 더 크다."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격정에 휩쓸리지 않은 채 객관적 시각을 유지한 대목이 돋보였다.

이렇듯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다양성에 늘 감사했고, 이런 성장은 변화의 아이콘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미국과 아시아, 아프리카, 무슬림 문화까지 포괄하고 있는 그의 가치는 스프링필드라는 수원지로 수렴돼 새로운 중심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사고무친(四顧無親)의 일리노이를 선택한 것도 링컨의 도시 스프링필드에서 중심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많은 군중으로부터 "Yes We Can!" 화답을 이끌어낸 변화의 열망 역시 스프링필드에서 링컨이 외친 자유와 진보와 해방과 통합의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내년은 링컨 탄생 200주년이다. 오바마가 링컨을 넘을 수 있을까. 그러면 스프링필드는 오바마의 성지가 되고, 일리노이는 'Land of Obama'로 불릴 수도 있겠다. 시카고가 그의 삶의 거처였다면, 스프링필드는 마르지 않는 정신의 우물이기 때문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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