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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KAIST가 스스로 적발해낸 '논문 조작'

설경. 2008. 3. 3. 18:29
KAIST는 생명과학과 소속 교수가 2005년과 2006년 세계적 학술지(誌) '사이언스'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각기 실은 두 논문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해당 교수를 대기발령하고 이 사실을 두 학술지에도 통보했다. KAIST는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 논문 조작 교수에 대한 최종 징계수위(水位)를 결정할 예정이다. 문제의 논문 중 하나는 2005년 세포 내 철(鐵) 성분 단백질을 자석 원리를 이용해 분리해냈다는 내용으로 그 기술은 마술 같다고 해서 '매직'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다른 하나는 2006년 세포 노화(老化)를 억제하는 물질을 찾아냈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서남표 KAIST 총장도 두 논문에 대해 "노벨상도 탈 수 있다"고 했을 만큼 국내외를 놀라게 했기에 충격도 더 크다. 한국 과학계는 2005년 황우석사건에 이어 다시 한번 오명(汚名)을 남기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KAIST 스스로 논문 조작을 적발했다는 점이다. 처음 의문을 제기한 것은 문제 교수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 교수가 세운 벤처회사에서도 일해온 그 학생은 2년 가까이 거듭 실험해봤지만 논문의 결과가 안 나오자 회사 상사에게 "논문 조작인 것 같다"고 알렸다. KAIST 생명과학과는 지난달 12일 그 얘기를 전해들은 그날로 학과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가동했다. 위원 5명과 실무조사위원 4명은 두 논문 공동저자들과 문제의 교수 연구실 연구원들을 보름 넘게 거의 매일 자정까지 조사해 논문의 현미경 사진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KAIST '연구윤리성위원회'도 지난달 29일 학과 측 조사결과를 보고받고 즉각 문제의 교수를 대기발령하고 외부인사가 포함된 조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KAIST 연구윤리성위원회는 황우석사건 이후 구성됐다. 황우석사건 때엔 논문 공동저자가 15~25명, 연구원이 30여 명이나 됐지만 누구도 논문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대학과 병원의 '기관윤리위원회'는 황우석팀이 난자를 1200개나 썼어도 난자 확보과정의 문제점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이번 논문 조작이 외국 과학자에 의해 드러났다면 한국 과학계는 황우석사건을 겪고도 과학논문 검증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구제불능 국가로 손가락질받았을 것이다. 한국 과학계가 최소한의 자정(自淨) 능력은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것으로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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