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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안 한 화가는 실력이 없어서?" 반박에…
우리나라 근대 화단의 6대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 1892~1979)가 그린 경남 진주시 의기사(義妓祠) '논개 영정'이 지난 2월 4월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가 제작한 논개 표준 영정으로 바뀌었다.
김은호의 '논개 영정'은 친일화가가 그렸다는 이유로 논란을 빚다가 지난 2005년 5월에는 한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강제 철거당하기도 했다. 철거된 그림은 같은 달 26일 재봉안 됐지만, 친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지난 2006년 경남 진주시와 장수군은 전국 현상공모를 통해 새로운 논개 표준 영정을 그릴 제작자를 물색했고, 7차례의 엄격한 심의 끝에 충남대 회화과 윤여환 교수가 선정됐다.
김은호의 '논개 영정' 논란은 2007년 3월에 대법원이 그림을 강제 철거해 불구속 입건됐던 시민단체 대표 등 4명에게 벌금형을 확정하자 다시 한 번 주목 받았다. 1심, 항소심 모두에서 공용물건손상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그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역시 기각 당했다.
재판부의 판결은 "피고인들은 친일전력 화가 작품인 '논개 영정'을 철거한 목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치적 해석은 법원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지만 친일청산 정신 등을 감안하지 않은 아쉬운 점도 많다"고 밝혔다. 이런 경우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아직까지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친일청산논쟁
일본은 당대 최고의 한국 예술가들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용했다. 해방 이후, 그들의 친일 행적은 별다른 처벌이나 반성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미당 서정주는 일본이 그렇게 빨리 패망할 줄은 몰랐다는 말을 했을 정도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최고의 예술가들이 해방이 된 후 중요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여전히 최고의 권위와 명성에 따르는 기득권을 누렸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과거사 문제를 바로잡고자 친일 예술가들의 행적을 밝혀내고 그 명단을 공개하자 대한민국 최고의 원로화가들은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를 상대로 공개사과문 발표를 요구하고 일간지 지면 광고를 통해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라는 성명서를 냈다.
어느 원로화가가 자신의 고향에 기념관을 지으려고 할 때 시민단체들이 그의 친일예술행적을 지적해 비난하자 "…당시 친일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은 실력이 없었어. 당시 뽑힌 사람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높은 나무가 바람을 많이 받는 것처럼 나는 지금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것이야"라고 반박한 적도 있다. "친일은 강압에 의한 부득이한 결과였다"라는 단골로 등장하는 변명과 함께, 소위 '재능론·상황론·전국민 친일론'을 내세워 무작정 덮어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들은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인 동시에 존경받는 예술가였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작품들의 영향력은 그만큼 강력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본의 전쟁 부역자로 나선 이들의 행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친일청산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문제
우리는 불행했던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거사를 신속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과거사 청산문제를 두고 지금까지도 양 진영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과거 우리가 겪은 불행한 역사와 그로 인해 생겨난 역사적인 유물들은 모두 파기해야 할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유물의 친일행적을 객관적으로 밝혀 올바른 역사교육의 자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역사 유산은 유산으로, 객관적 사실은 사실로 밝혀 우리가 다시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 중에서도 가장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친일문제다. 지난 2004년 '친일진상규명법'이 제정되면서 친일청산의 움직임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된 가운데 친일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적 유물, 유적을 비롯해 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친일 행위를 한 인물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와중에 대한민국의 대표적 예술가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일제 강점기의 친일예술가들에 대한 논쟁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그 누가 이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과거의 잘못을 덮어 없앨 수는 없다.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뉘우칠 때 다른 이들의 관용과 용서를 기대할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등 우리의 역사적 주권도 위협 받는 실정에서 반성과 사죄, 관용과 용서로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화해가 필요할 때다.
[최혜원 블루 로터스 아트디렉터·건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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