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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다시 뜨는 '히노마루 비행기'

설경. 2008. 3. 21. 10:47
선우정 도쿄특파원
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는 군국주의 시설로 악명이 높다. 이 악명을 더욱 심화시키는 곳이 신사 안에 있는 '유슈칸(遊就館)'이란 전쟁박물관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면 붉은 히노마루(일장기)를 그린 검푸른색 전투기를 바로 접한다. 진주만 공습과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에 사용된 야스쿠니의 상징 '제로센(零戰)'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히노마루와 벚꽃이 그려진 '오우카(櫻花)'란 괴상한 비행 물체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타고 조종해 적(敵)을 타격하도록 만든,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인간 폭탄'이다.

유슈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은 이런 병기를 보면서 '전쟁의 잔인성'을 떠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70년 전에 벌써 이런 비행기를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는 소감도 자주 들었다. 실제로 제로센을 비롯한 '라이텐(雷電)', '하야부사' 등 일본 전투기는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세계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첨단 전투기로 이름을 날렸다.

전쟁 직후 미군이 가장 경계한 일본의 기술은 항공 분야였다. 진주만 공습 때 당했던 끔찍한 체험이 반영됐다. 기술의 명맥을 끊기 위해 모든 일제(日製) 전투기를 파괴하고 자료를 몰수했으며 기업을 해체했다. 그것도 모자라 '항공금지령'을 내려 항공기 제조와 연구 자체를 금지했다. 그 공백이 10년이 넘는다.

일본은 검질긴 나라다. 특히 기술에 관해 그렇다. 1956년 금지령이 풀리자 일본 정부는 '5인의 사무라이'라고 불린 기술자를 한 지붕에 모았다. 전전(戰前) 미쓰비시(三菱)중공업에 소속돼 '제로센'을 만든 호리코시 지로. 일본 최고 명문 제1고등학교와 도쿄제대 공학부를 수석 졸업한 천재였다. 인간폭탄 '오우카'를 만든 기무라 히데마사. 도쿄제대 교수를 지내면서 전투기 제조에 헌신했던 인물이다. 이외 3명도 전쟁 당시 전투기 제조의 특급 엘리트였다.

이들은 감추고 있던 '제로센' 도면을 꺼냈다. 전투기 도면을 토대로 개발을 거듭해 프로펠러 여객기 'YS-11'의 설계를 완성했다. 전투기 기술이 여객기 기술로 거듭난 것이다. 그 후 설계를 토대로 항공기 제작을 주도한 인물 역시 미쓰비시 출신인 도조 데루오, 'A급 전범'으로 전후 미군에 의해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차남이었다. "넌 기술자로 살아남아 보국(報國)하라"는 도조의 유지(遺志)가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YS-11' 생산은 1972년 일본 정부의 결정으로 중단됐다. 양산에 성공해 182대를 생산한 직후였다. 채산성이 악화됐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항공 패권을 장악한 전승국 압력에 굴복한 탓이라는 설도 있다. 이 결정으로 일본의 항공기 생산은 다시 30년에 가까운 공백을 맞게 된다.

20일 아침 일본 조간신문을 펼치니 1면에 '히노마루 제트기, 비원(悲願)의 취항'이란 큼지막한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일본 항공사들이 미쓰비시가 개발에 성공한 제트여객기를 대량으로 도입해 노선에 투입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항공기 역사의 세 번째 도전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다른 전투기 제조업체와 마찬가지로 전후 해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이 열린 1964년, 후계기업들은 '미쓰비시' 간판 아래로 재집결했다. 해체되지 않은 기술자들의 염원이 기업을 부활시킨 것이다. 지금 그 염원이 '히노마루 비행기'를 또 한번 세계의 하늘에 띄우려 하고 있다. 일본의 '기술(技術) 민족주의'가 다시 비상(飛上)하는 순간이다.

[선우정 도쿄특파원 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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