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갈비로 홈쇼핑 매출 100억 올리며 다시 일어선 사업가 전철우

설경. 2008. 3. 26. 17:08
1989년 처음 밟은 남한 땅은 낯설었다. 명문대 졸업 후 동독 드레스덴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전철우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날, 인생의 추를 정반대로 옮겨놓았다.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남한에 온 지 19년째. 깡마른 20대 엘리트 청년이었던 그도 이제는 입가에 넉넉한 괄호 주름이 걸린 중년 사업가가 되었다.

죽음을 생각했던 힘든 시간, 극복하고 재기 성공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마치 여러 인생을 산 것처럼 다양하게 말이죠. 한동안 저 바닥끝까지 실패와 좌절도 겪었지만 이제는 자신감도, 활력도, 행복도 맛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의 비법을 담은 야심작 '전철우의 항아리 갈비'가 홈쇼핑에서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식품으로 그것도, 단일 품목으로만 100억원어치를 팔았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그의 항아리 갈비가 '히트'를 치자 여기저기서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사실 저는 실감도 안 날뿐더러 매출액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워낙 고기 종류가 홈쇼핑 채널마다 많이 나오고 몇 달도 못가 금방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 2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밖에요. 홈쇼핑 쪽에서 3만원대 한 가지 상품으로 30만 세트 정도를 판 것은 대단한 기록이라고 하더라구요. 요즘에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저만 보면 '갈비' 이야기부터 꺼냅니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건 '전철우의 고향 랭면'으로 처음 음식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기와 사업 실패를 맞았고, 연이어 이혼의 아픔까지, 계속된 상처 끝에 이를 악물고 일궈낸 재기였다.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너무 철없고 뭘 모르던 때에 무작정 뛰어들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경영도 잘 모르고 나만의 노하우도 없었죠. 그런 데다 나쁜 마음으로 접근한 사람들을 믿고 너무 가까이 뒀어요."

피붙이 한 명 없이 외롭게 살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을 쉽게 믿고 정을 붙였다. '친형제'가 되자던 사람들은 전철우를 빈털터리로 만든 뒤 떠나버렸고 그는 그냥 그렇게 주저앉는 듯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그때는 정말 죽고만 싶었어요. 자살할 궁리도 했죠. 어떤 날은 내가 죽을 게 아니라 나를 팽개친 사람들 집을 찾아가서 불이라도 질러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매일 바깥출입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소주만 마셔댔죠. 그러다가 문득 '나한테 사람들이 뺏어갈 것이 있을 정도로 내가 가진 것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곳에 맨몸으로 온 사람인데 말이죠."

그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자신이 누군가 뺏어갈 마음을 먹을 정도의 물질을 가졌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전철우는 햇빛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당시에는 마음이 아파 얘기도 잘 못했던 건데, 사실 죽고 싶었던 그 시기에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은 너무나 훌륭한 분이셨어요.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부모님께 얼마나 죄송할까,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서 어떻게 얼굴을 뵙나, 이러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이 저를 세워줬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다시 시작한 그의 곁에는 다행히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절친한 친구들이나 그를 도와주던 분들은 변함없이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사람들이 다 떠난다고 들었죠. 그런데 그 말은 틀린 것 같더군요. 제가 힘을 실을 수 있도록 지지대가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어떤 도움보다 '철우는 돼, 무조건 잘될 거야'라고 말해준 이들을 잊을 수 없어요."

6월에 태어날 아기, 손꼽아 기다려

심기일전 새로 출발한 전철우는 이제 100억 매출을 올리는 사장님이 되었다. (주)코레 푸드의 대표로 직접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한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지지해주는 건 속 깊은 아내 표진영씨다. 지난해 1월 조용히 화촉을 올린 뒤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부부는 오는 6월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 잘해줘야 평생 원망을 듣지 않는다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생각보다 입덧이 심하지 않다는 거예요. 식구가 한 명 늘게 된다고 생각하니까 약간 걱정도 되고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에 더 매달리게 되는 것 같네요. 아내는 태어날 아기가 듬직한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저는 뭐, 건강하기만 했으면 하죠."

혼자라는 가슴 시림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아는 그에게, 은은한 응원을 보내주는 아내의 존재는 너무도 큰 축복이다. 일이 바쁘다 보니 얼굴 볼 시간도 드물고 임신한 아내와 눈을 맞추며 태교를 함께해 주지도 못하는 '못된' 남편이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이 갖는 힘만은 누구보다 크게 느끼고 있다.

"음식 사업을 하니까 새로 생긴 곳이나 맛있다고 이름난 곳 등 좋은 음식점을 많이 알고 있거든요. 사실 주말이면 피곤하기도 하고 음식점 요리 대신 집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아내가 좋아하니까 자주 외식 겸 데이트를 하러 나가려고 합니다. 워낙 음식을 평가하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제가 아내의 음식도 냉철하게 평가를 해서 좀 속상하다고 하더군요."

한번은 아내가 요리 학원까지 다니며 열심히 연습한 요리를 그 앞에 내놓은 적이 있다.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차려낸 식탁 앞에서 그가 "이만큼 좋은 재료를 써서 요리를 했는데 당연히 이 정도 맛은 나와야지`"라고 얘기했던 것. 아내가 얼마나 속상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것도 모자라 휴일이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느라 아내를 실험시키기 일쑤다. 조금씩 양념을 바꿔 내놓으며 "어떤 것 같냐"고 거듭 묻는데, 아내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음식 사업에 대한 전철우의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이기에, 서운함보다는 이해와 고마움으로 남편과의 간극을 메워가고 있다고 한다.



'전철우의 항아리 갈비'를 가장 애용하는 사람도 바로 아내 표진영씨다. 특히 양념이 맛있기 때문에 프라이팬에 밥이랑 잘게 썬 고기를 넣고 양념을 듬뿍 넣어 볶아 먹는다. 물론 하루 종일 항아리 갈비를 끼고 사는 전 대표에게는 생선구이 같은 반찬을 차려낸다. 그러나 아내 혼자 있을 때나 친척,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탁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항아리 갈비라니, 아내도 이번 매출 달성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이름 걸고 좋은 음식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싶어

한때는 개그맨으로 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누렸던 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음식 사업을 평생 해야겠다는 확신이 든 이후로 전철우의 모든 촉수는 식품 사업에 고정돼 있다. 하루를 단위별로 쪼개 회의에 참석하고, 시장조사를 다니고, 맛을 개발하고, 상품화를 고민한다. 어설프게 이름만 걸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직접 개발부터 판매까지 책임지고 있다.

"이제 식품 사업을 한 햇수가 10년이 훨씬 넘습니다. 그동안 노하우도 많이 익혔고 무엇보다 엄청나게 노력해왔습니다. 지금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는 자신감도 있고 계속 마르지 않는 애정도 솟아납니다. 항아리 갈비 다음으로 준비하고 있는 식품 출시도 해야 하고 제 이름을 걸고 음식 사업을 하는 만큼 저를 믿고 구입해주시는 소비자들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게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재료값이 오르면 판매량을 줄일망정 재료를 아끼지 않는 것이 원칙이죠."

요즘 전철우의 관심은 온통 상품화 연구에 쏠려 있다. 냉면, 만두, 국밥, 갈비 등 지금 판매하고 있는 식품의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진출은 상당히 많이 진척된 상태다. 재일교포 식당이 아닌 일본 현지 유통업체를 통해 곧 그의 음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망하는 가게는 왜 그렇고 잘되는 음식은 왜 그럴까를 분석하고 시장 흐름을 읽으려 꾸준히 노력합니다. 요즘은 양보다는 몸에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어 예쁘게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가격이 비싸더라도 조금씩 다양하게 담아낸 제품이 사랑받는 것을 보세요. 어떻게 상품화 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눈앞에 펼쳐져 있던 평탄한 길을 뒤로하고 이념의 장벽을 넘었던 전철우는 이제 어지러울 만큼 깊은 굴곡의 시간들을 거쳐 이 자리에 섰다. 그의 이름 앞에 늘 수식어로 붙던 '탈북자'라는 단어가 낯설어진 지 오래다. 꽤 오랜 기간 '신기하고도 무서운' 사람이었던 그가 이제 이곳에서 단단히 뿌리를 내린 '사업가 전철우'가 된 것. 그동안 많은 편견과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한 단계씩 성취해 나가는 재미에 흠뻑 젖어 있는 요즘도 사람과 일에 대한 '순수함'은 자신의 무기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 남자. 그의 성공이 단순히 한 사업가의 성공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은 그 뒤에 새겨진 우리와 사회의 모습 때문일 터다. 앞으로 또 그가 넘게 될 수많은 인생의 장벽들, 꿈을 가진 그가 그 시간들을 어떻게 요리해낼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홍태식(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