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통계로 세상읽기]소득으로 본 난쟁이와 키다리

설경. 2008. 4. 8. 16:02
[동아일보]
잘사는 사람 - 못사는 사람… 줄어들지 않는 격차
한국 최상위 부자 소득, 최하위층의 8.8배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펜(J.Pen)이 쓴 '소득 분배'라는 책에는 소득 불평등에 관한 재미있는 설명이 나온다. 가상의 가장행렬이 있다. 이 행렬에는 소득이 있는 모든 사람이 출연한다. 흥미로운 것은 출연하는 사람들의 키가 각자의 소득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키다리로 출연하고, 평균 소득을 가진 사람은 평균 신장(170cm)으로 출연하며, 소득이 적은 사람은 난쟁이로 출연한다. 이 가장행렬은 영국에서 1시간 동안 벌어진다. 영국의 모든 인구 모델이 1시간 동안에 모두 출연해야 하므로 이 가장행렬은 빠르게 진행된다.

가장행렬에 처음 등장하는 사람들은 머리를 땅 속에 파묻고 거꾸로 나타난다. 거꾸로 서 있다는 것은 키가 마이너스(즉, 소득이 마이너스)라는 뜻이다. 즉, 파산한 사업가나 빚진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나가고 나면 마치 개미처럼 땅바닥에 붙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소인국 사람들처럼 키가 몇 cm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이 지나가고 한참 뒤에 키가 1m가 채 안 되는 난쟁이들이 등장한다. 정부가 주는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노약자와 실업자, 장사가 잘 안 되는 노점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천재 화가 등이 그들이다. 그 다음에는 1m가 조금 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30분이 지나도록 계속 난쟁이들만 등장한다. 그래서 펜은 이를 '난쟁이의 행렬'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한 사회 안에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행렬이 시작된 지 48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평균 신장(170cm)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회구성원의 대다수가 평균 소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키가 급속히 커진다. 54분이 되면 키가 2m가 넘는 키다리들이 등장한다. 그 다음에는 5m가 되는 거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군 고급장교, 국영기업 기술자, 평범한 변호사 등이다. 59분이 되면 8∼12m나 되는 거인들(대학 교수, 대기업 임원, 고등법원 판사 등)이 등장하며, 그 다음에는 20m가 되는 거인들(성공한 의사, 변호사 등)이 등장한다. 마지막 몇십 초를 남겨 놓고는 수십 m의 초거인들이 등장한다. 주로 유명한 대기업의 임원들이고, 일부는 왕족들이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필립 공은 60m이고, 석유회사 '쉘'의 전무는 110m이다. 마지막 몇 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키가 너무 커서 얼굴이 구름에 가려져 있으며, 마일(1마일=1600m) 단위로 키를 재야 한다. 대부분 거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이와 같이 소득에 비례하도록 키를 조정하여 가장행렬을 펼쳐 보니 대다수가 난쟁이고 키다리는 소수에 불과했다. 한 사회 안에는 소득이 적은 사람(난쟁이)이 많고, 소득이 많은 사람(키다리)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가장행렬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통계자료를 보면 한국도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표1을 보면 소득이 최상위인 10%계층(제10분위)은 소득이 최하위인 10%계층(제1분위)보다 8.8배나 많이 벌고 있고, 제9분위는 제1분위보다 5.6배나 많이 벌고 있다. 키로 말한다면, 제10분위 사람들의 키는 제1분위 사람들보다 8.8배나 크며, 제9분위 사람들은 제1분위 사람들보다 5.6배나 큰 셈이다.

세계은행은 제1∼4분위의 40%계층을 저소득층, 제9∼10분위의 20%계층을 고소득층, 제5∼8분위의 40%계층을 중소득층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저소득층의 소득 점유율이 고소득층의 소득 점유율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서 한 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재는 지표로 사용하는데, 이를 '10분위 분배율'이라고 한다. 10분위 분배율은 저소득층이 차지하는 점유율을 분자로 하기 때문에 이 값이 클수록 소득 분배가 더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공정한 분배'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고대 그리스 이래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는 롤즈(J. Rawls)의 견해는 우리나라에서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사회의 가장 못사는 계층의 복지가 극대화되는 것, 다시 말해 저소득층의 소득이 커지는 분배가 공정하다고 본다.

그런데 표3을 보면 우리나라는 저소득층의 소득점유율을 나타내는 10분위 분배율이 1993년 0.53, 1996년 0.56에서 2006년에는 0.52로 오히려 낮아졌다. 롤즈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분배 상태는 10년 전에 비해 악화된 것이다.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려면 정부에서도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경제생활에서 저소득층을 먼저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안병근 공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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