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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모 UC머시드대 총장. "초중고교때부터 일반과목 영어로 가르칠 필요없

설경. 2008. 5. 3. 12:00


◇강성모 UC머시드대 총장.
"한국이 일률적으로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영어 구사능력도 중요하지만 교육을 통한 지식축적 과정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국제무대에 진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 이외의 분야에서 얼마든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을 다양하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계 이민 1세로는 처음으로 미국 4년제 정규대학 총장이 된 강성모(63) UC머시드대 총장은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한국의 영어 몰입교육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강 총장은 캘리포니아주 전역에 있는 캘리포니아대 캠퍼스 중 10번째로 2005년에 문을 연 UC머시드대 총장에 지난해 3월1일 취임했다. 강 총장은 연세대 전자공학과 4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총장 자리에 올랐기에 그 누구보다 영어교육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을 것으로 생각해 이 문제부터 물어보았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커뮤니케이션 수단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잘하는 게 중요하지만 한국 학생들이 영어로 지식을 습득하는 데 치중하다 보면 지식의 깊이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확대하는 추세라고 들었는데요. 만약 학생들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지식을 전달받게 되면 학문적으로 깊이 있는 내용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요즘 한국에서 미국으로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을 보면 과거와 달리 영어를 아주 잘합니다. 그렇다고 한국 학생들에게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수학, 역사 등을 영어로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학생들이 나중에 사회의 각 분야에 진출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할 것입니다."

강 총장은 이어 미국으로 유학 오는 한국 학생들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학생들은 대체로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창의력 분야에서 뒤떨어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요즘에는 한국이 이 같은 문제점을 깊게 인식한 탓인지 최근에 미국으로 유학온 한국 학생들은 창의력 분야에서 많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데스토 미스틀린 화랑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 초대된 강성모 총장(오른쪽)이 현지 예술가와 만나 악수하며 환담하고 있다.
아멘포토닷컴(amenfoto.com) 제공
강 총장은 다만 한국 학생을 비롯해 동양문화를 배경으로 자란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과 비교할 때 발표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미국 교육은 개방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식탁에서도 늘 토론하지 않습니까. 이 때문에 미국 학생들은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 등 동양권 출신 학생들은 좀처럼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강 총장은 한국과 미국에서 학생들이 이공계 전공을 꺼리는 '이공계의 위기'가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이공계 전공 학생들의 사회진출 전망이 매우 밝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엔지니어링 분야 전문인력이 줄었고, 그래서 이 분야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최고경영자(CEO)가 엔지니어링 전공자입니다. 저는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총장이 됐습니다."

강 총장은 경신고를 졸업하고 병역을 마친 뒤 연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건너가 뉴저지주의 페어레이디킨슨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UC버클리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미국 명문 일리노이주립대의 전자·컴퓨터 공학과 교수와 학과장을 지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 독일 뮌헨대와 칼스루헤대, 미국 럿거스대 등에서 강의했다. 2001년부터 UC샌타크루즈대 공과대학장을 지냈다.

강 총장은 현재 등록된 특허만 14건을 보유하고 있다. 강 총장은 "14건 모두가 실용화된 것은 아니다"면서 "그렇지만 마이크로칩이 정전기로 파손되는 것을 막는 보호장치와 트랜지스터 리키지 방지장치 등은 상용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캘리포니아대 평이사회는 강 총장 등 전국에서 추천된 총장후보 65명의 자질 등을 심사한 뒤 그를 UC머시드대 제2대 총장으로 선임했다. 캘리포니아주 중부에 위치한 이 대학은 2005년 900명의 학생이 처음으로 등록했고, 2030년까지 학부와 대학원을 합해 모두 2만5000명까지 학생을 늘릴 계획이다. 강 총장은 지난해 KAIST 신임총장 공모에서 현 총장인 서남표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 등과 함께 최종후보 3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강 총장은 UC머시드대 총장으로 지난 1년 동안 활동한 소감과 장래 계획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4월 캘리포니아주 지역사회를 둘러본 강성모 총장(가운데)이 엘리시아 레이에스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공놀이를 하고 있다.
UC머시드대학 제공
"주립대학인 캘리포니아대는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공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UC머시드대는 아직 신생 대학이어서 홍보와 재정 확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인재 확보 및 양성을 위해서는 연구자금 확보가 우선이기 때문에 연방정부와 재단 등을 직접 방문해 재원을 확보하고 있어요. 현재 우리 대학에 한국계 학생들이 40여명 공부하고 있고 한인학생회도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 대학들과 협정을 맺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하려 합니다."

강 총장은 한국 유학생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1.5세 또는 2세의 장래에 대해서도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의 가족중심 문화가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의 활동에 든든한 뿌리가 될 수 있습니다. 유럽에 가 보면 4∼5개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이들처럼 여러 문화에 동시에 적응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문화 모두에 익숙한 사람들이 국제무대에서 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의 김치와 음식은 이제 세계인들이 즐기고 있고, 미국인들은 아시아 문화를 존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동양이나 서양 문화의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예를 들면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겸손은 미덕이고, 겸손한 사람이 존경받습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팀워크가 중요해지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노력을 한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강 총장에게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성공한 비결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노력이 성공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학창시절에도 공부를 못한 편은 아니었지만 최고도 아니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신념을 갖고 노력했지요. 칠전팔기라는 말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강 총장은 향후 자신의 인생계획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총장 임기는 없지만 대개 5년 정도 지나면 재심사를 받게 됩니다. 현재 총장 재임 1년 정도 지난 상황에서 개인적인 계획은 없고, 제가 맡은 대학을 훌륭하게 키워갈 생각뿐입니다."

강 총장의 부인 강명아(62)씨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2000년 은퇴했고, 자녀는 1남1녀다. 딸 정민(32)씨는 노틀담대 사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아들 성민(28)씨는 UC버클리대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이수 하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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