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뉴스

늦깎이 신입생들의 수능 재도전 성공기

설경. 2008. 5. 15. 16:33
늦깎이 신입생들의 수능 재도전 성공기

'다시 수능 한번 쳐 볼까?'
요즘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들이 하루에도 수 십 건씩 올라온다. 대학 중간고사가 끝나는 5월이면, 봄바람을 타고 수능에 재도전하려는 대학생들의 고민도 깊어진다. 이런 고민은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공부의 대가는 모질고 혹독하다.


↑ (왼쪽부터) 서울대 간호학과 김은하, 경희대 한의예과 소현주 /사진=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 김승완 기자 wanfoto@chosun.com

서울대 간호학과 늦깎이 신입생 김은하씨(08학번)

김은하(23)씨는 C대 간호학과를 2년간 다니다 올해 서울대 간호학과에 합격했다. 다시 새내기가 된 사실이 꿈만 같다.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 얼마나 행복한 지 실감이 안난다"고 말하지만, 그녀가 합격을 위해 흘린 땀은 질척하다.

4년 전 대전외고를 졸업한 그녀는 수능을 그르쳐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며 문과 대신 이과를 택했다. 간호학과나 약학과 진학의 꿈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과의 고통은 혹독했다. 과학탐구 영역을 비롯해 처음 접한 과목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따라잡았지만 수능에서 평소 모의고사에도 미치지 못한 점수를 받아 C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 'SKY 대학' 재학생이 많아 자극이 됐다. 수능 실패에 대한 미련만 커져 갔다. 2학년을 마칠 무렵, 그녀는 다시 한번 공부하기로 독하게 마음 먹었다.

그러나 뜻밖에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힘든 싸움을 다시 하려는 자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김씨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대학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았던 돈을 모두 털어 수능책을 샀다. 부모님, 친구들과도 모두 연락을 끊고 지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기에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대신 대학 도서관에서 자습을 했다. 시민에게 개방된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했는데, 도서관을 가득 메운 서울대 재학생들을 보면서 꼭 합격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주말에는 강남구청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매일 자정까지 독하게 공부했지만 그래도 문득문득 드는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떨치기 어려웠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을 때는 더욱 심했다. 수능을 보기 전날까지 그녀를 괴롭혔던 것은 제자리만 맴도는 언어영역이었다. 김씨는 "1등급이 표시된 언어영역 성적표를 직접 만들어 책상 위에 붙여놨다"며 "성적표를 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해졌고 꼭 1등급을 받고 말겠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과정까지 밟을 계획이다. 김씨는 "재도전에 성공하면서 모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재수는 본인의 의지에 의해 선택해야 하며 결심을 하고 난 후에는 스스로 책임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한의예과 늦깎이 신입생 소현주씨(08학번)
경북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소현주(31)씨는 웹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생활도 안정되고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머리 속에선 달랐다.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한 허전함과 욕망이 꿈틀댔다.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은 느낌에 시달렸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의사가 되고픈 게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고 한다. 소씨는 다시 대입을 치기로 결심한다. "평화로웠지만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뭔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선 친구 만나기, 취미 활동 등 주변의 유혹부터 너무 많았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예전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또한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에 주머니 사정도 신경이 쓰였다.

이런 난관이 있었지만 소씨는 결국 한번 더 수능을 보기로 했다. 그녀는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이라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주저할 때마다 주변에서 믿어주고 응원을 많이 해줘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3월. 재수 종합반 등록을 시작으로 수능이라는 대장정에 돌입했다. 달라진 교육과정에 맞춰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운다는 각오로 학원 시간표에 맞춰 준비했다. 그렇게 4개월을 하자 어느 정도 공부의 감(感)을 되찾았고,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원비도 부담돼 다니던 학원을 끊고 그때부터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했다. 소씨는 '선택과 집중'으로 공부했다. 부족한 과목이나 점수가 안 나오는 단원만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그 부분과 관련된 문제를 수없이 풀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EBS 강의를 활용하며 보완했다. 자신의 실력이 어떤지를 점검하기 위해 매달 사설기관이 진행하는 모의고사도 빼놓지 않고 봤다.

그러나 성적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7개월간 공부하고 본 2007학년도 수능에서 그녀는 목표 치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를 받았다. 좌절감이 밀려오고 불길한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렇게 주저앉을 수만은 없었다. 그 동안의 노력이 너무나 아까웠기 때문이다. 자신처럼 힘들게 다시 공부해 성공한 사람들의 합격수기를 읽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좌절하지 않고 일년을 다시 준비한 끝에 마침내 올해 경희대 한의예과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소씨는 재수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막연한 계획만으로 재도전하면 실패할 것"이라며 "힘들 때마다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굳은 의지와 독한 집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종임 맛있는공부 기자 bangji@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