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헤겔의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는 역사를 변증법적 과정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필연적 귀결은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라고 주장했다. 헤겔 철학을 받아들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역시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귀결은 사뭇 다르다. 변증법이란 정(正)과 반(反)이 경쟁하고 대립하다가 새로운 대안으로서 합(合)이 도출된다는 논리다. 그런데 후쿠야마는 그런 의미의 역사 과정은 종말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점에 달해있고, 이에 경쟁하거나 대립하는 이념이나 체제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멸해버렸기 때문에 변증법적 진보는 자유민주주의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산업화 초기를 겪으면서 역사 진행을 예측했다면, 후쿠야마는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역사를 진단했다. 우리는 후쿠야마와 같은 시대에 살기 때문에 마르크스보다는 후쿠야마의 진단에 더 설득되기 쉽다.
무엇의 종말(the end)이란 지극히 서양적 개념이다. 윤회를 강조하는 불교나 귀신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의 입장에서 종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사람들이 때때로 말세(末世)라는 말을 해왔지만, 그것은 기존의 질서가 더 이상 권위를 갖지 못하는 세태를 말할 뿐이지 인간세의 총체적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현존 질서가 과거와 달라진 양적 변화상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에 반해 기독교적 전통에서 말세 내지는 종말은 양적인 것은 물론이고 질적인 변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종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적 말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서양적 의미의 종말은 인간 모두가 복종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의미한다. 기존 세상에서는 모두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원리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것과 다른 강력한 대안적 원리가 혼재해있기 때문에 언제나 혼란스럽다. 또 혼재해 있는 여러 원리들 중에 어떤 것이 보편적이라고 판가름해줄 수 있는 절대적 권위도 없다. 따라서 서로 세력 경쟁을 하게 마련이고 서로 타협하기도 한다. 종말이 왔다는 것은 그런 혼란과 경쟁, 타협이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이념) 대립의 최전선에 있었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느 날 해방, 남북 분단, 전쟁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데올로기는 우리 몸에 DNA처럼 각인되고 스며들었다. 후쿠야마식의 역사의 종말도 그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사라지거나 사라져야 할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종말 이후 보편적 원리가 될 이념의 영역에 속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우연성에 감사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까.
종말 이후 세계의 특징은 보편성(universality)에 있다. 이것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철두철미하게 적용되는 성질을 갖는다. 보편성을 획득한 원리에 대한 거역과 거부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후쿠야마식의 '역사의 종말'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사회와 국민의 뇌리를 파고드는 지배적인 언어는 '보편성'을 획득한 것처럼 행세한다. 경쟁의 원리나 시장의 원리가 대표적이다. 조금이라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논리를 펴면 낡은 이념 즉 이미 사라져버린 이념에 매달리고 있다고 핀잔을 주고 비판을 퍼붓는다. 미국에서 적용되는 것이라면 한국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부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보편성의 특징이다. 얼핏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보편성 혹은 '보편적'이라는 말이 어떤 원리나 원칙과 결합하면 때때로 아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적이라고 의미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할 수단이 언제나 보편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고 사람마다 능력이 제각각인데, 게다가 인생관마저 각양각색인데, 궁극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으로 적용한다면,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조리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종말 이후라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역사적 진리'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부조리가 이미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 .'역사의 종말'의 의미를 논의해보라.
2 보편성이란 무엇인지 논의해보라.
3 수단이 보편성을 획득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논의해보라.
<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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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의 종말(the end)이란 지극히 서양적 개념이다. 윤회를 강조하는 불교나 귀신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유교의 입장에서 종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질 수도 없다. 사람들이 때때로 말세(末世)라는 말을 해왔지만, 그것은 기존의 질서가 더 이상 권위를 갖지 못하는 세태를 말할 뿐이지 인간세의 총체적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현존 질서가 과거와 달라진 양적 변화상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에 반해 기독교적 전통에서 말세 내지는 종말은 양적인 것은 물론이고 질적인 변화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종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동양적 말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서양적 의미의 종말은 인간 모두가 복종해야 하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의미한다. 기존 세상에서는 모두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적 원리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것과 다른 강력한 대안적 원리가 혼재해있기 때문에 언제나 혼란스럽다. 또 혼재해 있는 여러 원리들 중에 어떤 것이 보편적이라고 판가름해줄 수 있는 절대적 권위도 없다. 따라서 서로 세력 경쟁을 하게 마련이고 서로 타협하기도 한다. 종말이 왔다는 것은 그런 혼란과 경쟁, 타협이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냉전 시대 이데올로기(이념) 대립의 최전선에 있었다.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느 날 해방, 남북 분단, 전쟁 등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데올로기는 우리 몸에 DNA처럼 각인되고 스며들었다. 후쿠야마식의 역사의 종말도 그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사라지거나 사라져야 할 이념의 영역이 아니라 종말 이후 보편적 원리가 될 이념의 영역에 속해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 우연성에 감사할 것이다. 그러면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될까.
종말 이후 세계의 특징은 보편성(universality)에 있다. 이것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철두철미하게 적용되는 성질을 갖는다. 보편성을 획득한 원리에 대한 거역과 거부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후쿠야마식의 '역사의 종말'에 도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사회와 국민의 뇌리를 파고드는 지배적인 언어는 '보편성'을 획득한 것처럼 행세한다. 경쟁의 원리나 시장의 원리가 대표적이다. 조금이라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논리를 펴면 낡은 이념 즉 이미 사라져버린 이념에 매달리고 있다고 핀잔을 주고 비판을 퍼붓는다. 미국에서 적용되는 것이라면 한국에서도 적용되어야 한다. 부자에게 적용되는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보편성의 특징이다. 얼핏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보편성 혹은 '보편적'이라는 말이 어떤 원리나 원칙과 결합하면 때때로 아주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예외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적이라고 의미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달성할 수단이 언제나 보편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는 모습은 각기 다르고 사람마다 능력이 제각각인데, 게다가 인생관마저 각양각색인데, 궁극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으로 적용한다면,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조리가 발생하고 말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종말 이후라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는 '역사적 진리'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부조리가 이미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1 .'역사의 종말'의 의미를 논의해보라.
2 보편성이란 무엇인지 논의해보라.
3 수단이 보편성을 획득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논의해보라.
< 최윤재 | 서울디지털대학 문창학부 교수·한국논리논술연구소장 klogica@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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