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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쇠고기 고시’ 끝내 밀어붙일 셈인가

설경. 2008. 5. 27. 20:05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을 반영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장관 고시를 이번주중 강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미국에 파견했던 쇠고기 수출작업장 점검단이 어제 귀국함에 따라 이들로부터 활동 결과를 보고받는 모양새를 갖춰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하겠다는 얘기다.

정부가 미국과의 추가협의를 통해 국민의 ‘쇠고기 불안’을 해소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재협상해야 한다는 국민 다수의 여론을 무시하겠다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추가협의로 검역 자주권을 확보했다지만 국제법에 근거한 일반적 권리를 확인받은 것에 불과하다. 그나마 광우병이 발생해도 ‘국민건강이 위협을 받을 경우’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수입중단을 할 수 있다. 추가협의를 통해 확실히 달라진 것은 척추뼈 일부를 수입금지 대상에 추가한 것뿐이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전면 허용, 월령 표시 품목 및 기간 제한, 수출작업장 승인권을 미국에 내준 것 등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정부는 “할 만큼 했다”는 태도다. 독소 조항들을 그대로 놔둔 채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해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시 연기가 졸속협상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부가 여론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시간을 며칠 끈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현지 일정조차 못잡은 채 떠난 점검단 9명이 2주일도 안되는 동안 미국 전역의 31개 수출 작업장을 효과적으로 점검했을 것으로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결국 ‘쇠고기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추가협의나 점검단 파견 같은 형식만 갖춘 채 쇠고기 파문을 덮고 가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국민께 송구스럽다”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 외에는 졸속협상을 책임진 사람도 없고, 협상 내용도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장관 고시를 강행한 다음 성난 민심이 가라앉을 것으로 판단한다면 참으로 무모하고 무책임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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