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 서울 시청앞 광장에 모인 10만여 시민을 비롯해 전국 100여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온 ‘쇠고기 촛불 인파’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절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시민들은 경찰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새벽까지 ‘이명박 퇴진’을 외쳤다는 점에서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탄핵을 당한 상태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이 거대하고 도도한 국민적 외침을 보고 있노라면 21년 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굴복시켰던 6월항쟁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작금의 ‘쇠고기 항쟁’은 6월 항쟁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주권자인 국민이 군사독재정권 또는 독재의 모습을 띠어가는 정권에 대해 항거했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 반면 6월항쟁이 군부독재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였다면 지금의 촛불 항쟁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또는 재협상 촉구라는 생활밀착형 현안에서 출발해 대통령 퇴진 요구 등으로 확산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항쟁의 주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6월항쟁은 재야민주화세력이 지도부를 형성하고,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젊은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주력부대가 된 조직적인 시위였다. 반면 ‘쇠고기 항쟁’에는 지도부가 없다. 정부·여당과 수구언론 등은 걸핏하면 ‘불순 배후세력’ 운운하지만 그야말로 ‘광우병에 걸린 소도 웃을’ 헛소리일 뿐이다. 한달째 계속되고 있는 쇠고기 시위에는 중·고교생과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나온 주부, 시골에서 상경한 칠순 노인, 갓 전역한 젊은 예비군, 자영업자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와 계층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 쇠고기 촛불항쟁이 절정을 이룬 엊그제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자발성과 비폭력성에 기초한 국민대중의 집회·시위에 대해 정부는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경찰의 물대포 발사와 마구잡이 연행, 방패로 내려찍고 진압봉으로 두들겨패기 등의 폭력적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이 실신하는가하면 임신부가 연행되고, 진압봉으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등 적지 않은 시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이처럼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구조적 요인의 최고 정점에 이 대통령이 있다고 믿는다. 며칠 전 이 대통령은 민정수석실로부터 촛불집회 관련 보고를 받던 도중 “양초는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하는지 보고하라”고 질타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대통령은 불순 세력들이 자신들의 자금으로 시민들에게 양초를 사주고, 선량한 시민들을 배후에서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이런 안이하고도 위험한 인식을 갖고 있으니 촛불 정국의 올바른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주권자의 분노어린 함성을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에 놀아나는 우중(愚衆)의 경거망동쯤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나 기기묘묘한 처방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검·경 당국의 대응책이 시대착오적 공안통치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터이다.
이른바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장관 몇명을 교체한다거나,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TV로 생중계한다는 따위의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양초 자금 구입처’ 운운으로 드러난 현재의 인식과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 모든 묘방과 수습책은 헛된 노력에 그칠 것이다. 대통령이 여러번 고개를 숙이며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해놓고 정작 대통령이 해외 순방하는 시기를 골라 기습적으로 장관 고시를 강행하는 따위의 꼼수를 부려서는 국민들의 분노만 부채질할 뿐이다.
이 대통령은 시민들이 들고 나온 양초의 구입 경위에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왜 갈수록 국민들의 시위동참이 늘어만가고 있는지,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헤아려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6월항쟁 당시의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 수용으로 항복한 뒤 파국을 막았듯이 이명박 정부도 국민들의 외침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두고두고 후회할 불행한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항복하는 것은 결코 불명예나 치욕이 아니다. 경찰력을 증강시켜 비폭력 무저항의 시민들을 강경진압하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함으로써 유혈사태를 낳는 것이야말로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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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하고 도도한 국민적 외침을 보고 있노라면 21년 전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을 굴복시켰던 6월항쟁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작금의 ‘쇠고기 항쟁’은 6월 항쟁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주권자인 국민이 군사독재정권 또는 독재의 모습을 띠어가는 정권에 대해 항거했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한다. 반면 6월항쟁이 군부독재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는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요구였다면 지금의 촛불 항쟁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또는 재협상 촉구라는 생활밀착형 현안에서 출발해 대통령 퇴진 요구 등으로 확산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차이는 항쟁의 주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6월항쟁은 재야민주화세력이 지도부를 형성하고, ‘넥타이부대’로 상징되는 젊은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이 주력부대가 된 조직적인 시위였다. 반면 ‘쇠고기 항쟁’에는 지도부가 없다. 정부·여당과 수구언론 등은 걸핏하면 ‘불순 배후세력’ 운운하지만 그야말로 ‘광우병에 걸린 소도 웃을’ 헛소리일 뿐이다. 한달째 계속되고 있는 쇠고기 시위에는 중·고교생과 대학생, 유모차를 끌고나온 주부, 시골에서 상경한 칠순 노인, 갓 전역한 젊은 예비군, 자영업자 등 그야말로 남녀노소와 계층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있다. 쇠고기 촛불항쟁이 절정을 이룬 엊그제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자발성과 비폭력성에 기초한 국민대중의 집회·시위에 대해 정부는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경찰의 물대포 발사와 마구잡이 연행, 방패로 내려찍고 진압봉으로 두들겨패기 등의 폭력적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이 실신하는가하면 임신부가 연행되고, 진압봉으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등 적지 않은 시민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이처럼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구조적 요인의 최고 정점에 이 대통령이 있다고 믿는다. 며칠 전 이 대통령은 민정수석실로부터 촛불집회 관련 보고를 받던 도중 “양초는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하는지 보고하라”고 질타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대통령은 불순 세력들이 자신들의 자금으로 시민들에게 양초를 사주고, 선량한 시민들을 배후에서 선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이런 안이하고도 위험한 인식을 갖고 있으니 촛불 정국의 올바른 해법이 나올 리 없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주권자의 분노어린 함성을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에 놀아나는 우중(愚衆)의 경거망동쯤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나 기기묘묘한 처방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검·경 당국의 대응책이 시대착오적 공안통치로 흐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일 터이다.
이른바 민심수습책의 일환으로 장관 몇명을 교체한다거나,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하는 모습을 TV로 생중계한다는 따위의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양초 자금 구입처’ 운운으로 드러난 현재의 인식과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 모든 묘방과 수습책은 헛된 노력에 그칠 것이다. 대통령이 여러번 고개를 숙이며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사과해놓고 정작 대통령이 해외 순방하는 시기를 골라 기습적으로 장관 고시를 강행하는 따위의 꼼수를 부려서는 국민들의 분노만 부채질할 뿐이다.
이 대통령은 시민들이 들고 나온 양초의 구입 경위에 관심을 가질 만큼 한가하지 않다. 왜 갈수록 국민들의 시위동참이 늘어만가고 있는지, 국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헤아려 이를 전폭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6월항쟁 당시의 전두환 정권이 직선제 수용으로 항복한 뒤 파국을 막았듯이 이명박 정부도 국민들의 외침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두고두고 후회할 불행한 사태를 예방해야 한다.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항복하는 것은 결코 불명예나 치욕이 아니다. 경찰력을 증강시켜 비폭력 무저항의 시민들을 강경진압하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함으로써 유혈사태를 낳는 것이야말로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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