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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슈로 본 논술] 68혁명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기

설경. 2008. 6. 12. 07:52
각양각색의 가치, 권위로 억누르지 마세요

■68혁명 40주년 평가 작업


68혁명 40주년을 맞은 프랑스 에서는 혁명 관련 책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각종 예술 문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혁명의 유산이 프랑스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과도한 평등주의 사상으로 자본주의 도덕적 가치가 훼손됐고, 시민정신도 손상됐다. 성과, 보상, 땀의 가치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하겠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콩방디 유럽의회 의원은 학교와 직장에서 자율과 민주주의를 꿈꾼 것이 무슨 죄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오히려 사르코지 대통령이 두 번의 이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은 68혁명의 성과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8혁명에 관한 논의가 사회사상가들 사이에서 한국적 상황과 결부시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68혁명의 시작과 전개 과정


1965년 8월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 베트남 공산주의 세력 척결에 나서면서 베트남 전쟁이 시작됐다.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 에서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8명의 대학생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무실을 습격했다. 이들은 전원 체포됐고, 동료들은 이들을 석방하라며 대학 학장실을 점거했다. 정부는 학교로 무장경찰을 투입했고, 학교는 폐쇄됐다. 이에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 여파는 노동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혁명 정신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됐다.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에 의한 흑인민권운동이 절정을 이뤘고, 독일 에서는 나치의 잔재 청산과 언론·대학 개혁이 이뤄졌다. 체코 크로아티아 에서는 구소련의 점령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일본 에서는 학원 민주화 투쟁이 불붙었다.

■세대 간의 갈등과 사회문화 혁명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해온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전 세대와는 차원이 달랐다. 대학은 암기식 위주의 주입식 교수법과 불합리한 시험제도가 개선되지 않았다. 취업 상황은 갈수록 악화됐고, 기성세대의 권위주의는 학생들을 숨 막히게 했다. 대학생들은 시험 성적으로 미래가 결정되지 않는 세상, 성·인종·직업·학력 때문에 차별받지 않는 세상, 소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건강한 세상을 꿈꿨다. 68혁명 첫 시위에서 내건 구호는 빵을 달라는 것도,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녀 성별로 나눠진 기숙사를 폐쇄하라는 구호가 메아리쳤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요구가 하찮아 보였고, 이런 요구를 가지고 거리에서 자동차를 불태우며 시위하는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루함은 반혁명이다" "상상력에 권력을" "책은 덜 읽고, 삶은 더 생생하게" "우리는 그 무엇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점거한다" 등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단지 감성적으로 느낄 수 있는 구호들이 많이 등장했다. 인권, 평등, 박애라는 사회문화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보다 우선시됐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를 철학적 관점에서 생각하기


'미술쟁점'이라는 책의 '생각해보기'코너에는 프랑스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리화나 흡연과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받을 때의 일화가 소개됐다. 그는 "남에게 해를 미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변호했다. 건강에 치명적인 각종 약물을 금지하는 기성세대와 국가의 정책에 대해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68혁명은 이러한 반항 정신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 외국인 차별, 낙태, 피임 등 일상생활 속에서 당연시되고 금기시되는 문화 현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각종 금지와 규제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철학함의 출발이다. 끊임없이 '왜'라고 물음표를 던져야만 규칙이나 법률, 윤리 규범의 정당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든가, 역사적 유산이라고만 대답해서는 변화하는 시대를 탄력적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 '일차원적 인간'이라는 책에서 마르쿠제는 사회가 기술지배 시스템, 관료제도가 안정적으로 구축되면서 이성의 비판적 사유능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한다. 68혁명은 도구적 이성만을 발휘하는 기성세대들에 대한 비판적 이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신세대들의 철학적 외침으로 평가할 수 있다.

■68혁명과 포스트모더니즘

21세기는 다양성의 세기이고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이다.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융합돼 살아간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한 과학만능주의와 권위주의, 관료주의는 한계를 드러냈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사회주의 혁명은 정치적·경제적 차원의 혁명이었다. 반면에 68혁명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거대 이념간의 대립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갈등을 예고했다. "나이 서른이 넘은 사람과는 대화도 하지 말라"는 혁명 세력들의 구호는 세대 간의 갈등이 후기 산업사회에서 갈등의 주요 축으로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개성을 중시하고 사회적 소수자와 여성의 권위 회복, 물질적 소유욕으로부터 탈출 등을 주장하며 삶의 영역에까지 파고든 68혁명의 이념은 다양한 논리를 인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을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갈등, 성장과 분배라는 경제적 시각차로만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68혁명 세대들이 이미 40년 전에 비판했던 권위주의 틀에 묶여 있는 꼴이다. 다양한 프리즘으로 일상생활에서의 권위주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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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