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욕망은 더러운 것인가?
‘욕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요? 사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떠오를까요? 사전은 이 단어를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어 간절히 바라고 원함, 또는 그 마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욕망 그 자체는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먼저 교과서에 있는 다음 노래의 내용을 잘 생각해 봅시다.
가시나무
―작사·작곡 하덕규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 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 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 ‘바람’의 잘못[국어(하) 4 - 효과적인 표현 ‘준비 학습’]
이 가사 속의 ‘나’는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욕망’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세요. (가사 속의 인물이 괴로워하고 있는 원인을 욕망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2행의 ‘헛된 바램’을 욕망과 연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욕망’이 긍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경우는 없을까요? 다음 글의 내용도 ‘욕망’과 연관지어 해석해 봅시다.
(가) 병자수호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배반하였다 하여 일본의 배신을 죄 주려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조 대대로 닦아 물려 온 업적을 식민지의 것으로 보고 문화 민족인 우리를 야만족같이 대우하며 다만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성품을 무시한다 해서 일본의 의리 없음을 꾸짖으려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이 없다. 현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리기에 급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잘못을 가릴 겨를이 없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오직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그것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일 뿐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써 남을 시새워 쫓고 물리치려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묵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功名)에 희생된, 불합리하고 부자연스러움에 빠진 이 어그러진 상태를 바로잡아 고쳐서,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올바르고 떳떳한, 큰 근본이 되는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던 두 나라 합방이었으므로, 그 결과가 필경 위압으로 유지하려는 일시적 방편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함께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오늘의 실정을 보라! 날래고 밝은 과단성으로 묵은 잘못을 고치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그 기초를 둔 우호적인 새로운 판국을 타개하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빠른 길인 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원한과 분노에 쌓인 2천만 민족을 위력(威力)으로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인하여서 동양의 안전과 위태함을 좌우하는 굴대[軸]인 4억만 지나 민족이 일본에 대하여 가지는 두려워함과 시새움을 갈수록 두텁게 하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넘어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붙들어 지탱하는 자의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이루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잊지 못할 괴로운 일본 침략의 공포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써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단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상의 문제이리오?
[국어(상) 7-(2) 기미 독립 선언서]
(나) 우는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이어라 이어라
漁어村촌 두어 집이 4 속의 나락들락
至지국국悤총 至지국국悤총 於어思사臥와
말가ㅱ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뛰노ㅱ다.
년닙희 밥 싸두고 반찬으란 쟝만 마라.
닫 드러라 닫 드러라
靑청蒻약笠립은 써 잇노라, 綠녹蓑사衣의 가져오냐.
至지국국悤총 至지국국悤총 於어思사臥와
無무心심ㅱ 白백鷗구ㅱ 내 좃ㅱ가 제 좃ㅱ가.
[국어(상) 6-(2) 어부사시사]
글 (가)와 (나)를 읽고 (1) 두 서술자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속성을 구별해 보고, (2) 인간의 욕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시오.
‘욕망’은 바라고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두 서술자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세요. ‘조선의 독립’과 ‘자연 속에서의 근심 없는 삶’ 정도로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음으로는 그 욕망의 속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가시나무’와는 달리 둘 다 괴로움을 주는 욕망이거나 파괴적인 속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욕망한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에 따를 때 (가)의 결과(조선 독립의 결과)는 그 영향이 세계 차원으로 확대됨을, (나)의 결과(자연 속의 삶의 결과)는 그 영향이 자신에 한정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관계 속의 존재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자신의 욕망에 수반될 여러 측면의 결과들을 검토해 보고 그에 따라 바람직한 욕망을 꿈꾸어 보는 것도 인간에게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요?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문제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유토피아에 대한 소망은 어쩌면 부조리한 현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세한 해설 및 참고 자료는 이지논술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근의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강사
출처 : 별먹는 빛
글쓴이 : 설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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