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녀와 소통도 잘 안되고
‘극성엄마’들 보며 불안감
종교에 많이 의지하기도
서울 강남에 있는 봉은사는 수능을 100일 앞둔 지난 8월, ‘학업원만성취 발원 100일 관음기도’를 시작했다. 수능날인 11월 13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리는 기도에 참석하는 이가 줄잡아 500여명이라고 한다. 기도가 열리는 법왕루는 매일 만원이다. 10월에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철야로 3000배를 올리는 기도 프로그램도 있다. 여기도 참석자가 줄을 잇는다.
종교는 학부모들이 선택하는 대표적 수험생활이다. 조아무개(44·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혹시라도 기죽이는 말을 할까봐 자녀한테 말을 아끼게 되고 자녀들 사이에 비교가 될까봐 또래 엄마들과도 마음놓고 대화할 수가 없다”며 “결국 종교에 마음을 기대게 되더라”고 했다. 이래저래 마음 기댈 곳이 마땅치 않기로는 학부모 역시 수험생과 같은 처지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신뢰할 수 있는 버팀목을 찾기 어렵다. 이아무개(47·서초구 양재동)씨는 “형편이 안 돼서 애들 학원에도 안 보내고 학교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학교에 가면 외려 학원에 보내라는 얘기를 듣는다”며 “우리 대학 갈 때는 학교에서 원서에 도장이라도 찍어줬는데 이제는 대학 가는 게 학교나 교사랑 상관없어진 것 같더라”고 했다. 결국 이씨는 서점에서 학습법 관련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의 저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 자녀와 함께 만났다.
박재원 비유와상징 공부연구소 소장은 “입시는 날로 복잡해지고 ‘정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학부모들에게 공신력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다”며 “교육제도가 인기에 영합해 수시로 바뀌는 피해를 학부모들 스스로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와의 소통이 끊기는 것도 학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박 소장은 “최근에 입시상담을 진행해 보면 자녀의 성적표조차 못 갖고 올 정도로 자녀와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며 “자녀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엉뚱한 요구를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녀와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극성 학부모들 탓에 스트레스 받는 일도 있다. 금아무개(40·마포구 상수동)씨는 얼마 전 아들한테 “엄마는 고3 엄마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입시설명회 쫓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 듣고 일러주는 엄마들이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라며 “입시설명회가 상위권 대학들 위주로 열려서 중위권 자녀에게 맞는 정보를 찾을 수도 없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다양한 이유로 불안에 떠는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자녀에 대한 ‘신뢰’다. 박 소장은 “많은 부모들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자녀의 행동을 보고 불성실하다며 야단을 친다”며 “진짜 신뢰는 자녀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녀의 심리상태를 그냥 믿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 알림
10월 6일자 함께하는 교육에 ‘교육발언대’ 지면이 새로 생깁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관련 시민단체, 학원 강사, 일반 시민 등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 있는 모든 분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본지의 ‘왜냐면’과 같은 성격입니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한 뚜렷한 주장과 타당한 논거가 있는 글이라면 본지의 편집방향과 상관없이 싣겠습니다.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으로 쓴 글을 edu@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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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엄마’들 보며 불안감
종교에 많이 의지하기도
서울 강남에 있는 봉은사는 수능을 100일 앞둔 지난 8월, ‘학업원만성취 발원 100일 관음기도’를 시작했다. 수능날인 11월 13일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리는 기도에 참석하는 이가 줄잡아 500여명이라고 한다. 기도가 열리는 법왕루는 매일 만원이다. 10월에는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철야로 3000배를 올리는 기도 프로그램도 있다. 여기도 참석자가 줄을 잇는다.
종교는 학부모들이 선택하는 대표적 수험생활이다. 조아무개(44·서울 강남구 대치동)씨는 “혹시라도 기죽이는 말을 할까봐 자녀한테 말을 아끼게 되고 자녀들 사이에 비교가 될까봐 또래 엄마들과도 마음놓고 대화할 수가 없다”며 “결국 종교에 마음을 기대게 되더라”고 했다. 이래저래 마음 기댈 곳이 마땅치 않기로는 학부모 역시 수험생과 같은 처지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대학 입시라는 중대사를 앞두고 신뢰할 수 있는 버팀목을 찾기 어렵다. 이아무개(47·서초구 양재동)씨는 “형편이 안 돼서 애들 학원에도 안 보내고 학교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학교에 가면 외려 학원에 보내라는 얘기를 듣는다”며 “우리 대학 갈 때는 학교에서 원서에 도장이라도 찍어줬는데 이제는 대학 가는 게 학교나 교사랑 상관없어진 것 같더라”고 했다. 결국 이씨는 서점에서 학습법 관련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의 저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 자녀와 함께 만났다.
박재원 비유와상징 공부연구소 소장은 “입시는 날로 복잡해지고 ‘정보’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학부모들에게 공신력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다”며 “교육제도가 인기에 영합해 수시로 바뀌는 피해를 학부모들 스스로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와의 소통이 끊기는 것도 학부모를 불안하게 만든다. 박 소장은 “최근에 입시상담을 진행해 보면 자녀의 성적표조차 못 갖고 올 정도로 자녀와 소통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다”며 “자녀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엉뚱한 요구를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녀와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극성 학부모들 탓에 스트레스 받는 일도 있다. 금아무개(40·마포구 상수동)씨는 얼마 전 아들한테 “엄마는 고3 엄마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입시설명회 쫓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 듣고 일러주는 엄마들이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라며 “입시설명회가 상위권 대학들 위주로 열려서 중위권 자녀에게 맞는 정보를 찾을 수도 없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다양한 이유로 불안에 떠는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자녀에 대한 ‘신뢰’다. 박 소장은 “많은 부모들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자녀의 행동을 보고 불성실하다며 야단을 친다”며 “진짜 신뢰는 자녀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녀의 심리상태를 그냥 믿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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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자 함께하는 교육에 ‘교육발언대’ 지면이 새로 생깁니다.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관련 시민단체, 학원 강사, 일반 시민 등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 있는 모든 분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본지의 ‘왜냐면’과 같은 성격입니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에 대한 뚜렷한 주장과 타당한 논거가 있는 글이라면 본지의 편집방향과 상관없이 싣겠습니다.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으로 쓴 글을 edu@hani.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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