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자료

개별답안 연결해 하나의 주제 부각하라

설경. 2008. 9. 29. 17:04

[한겨레] 우리말 논술
유형별 논술 교과서 / 13. 문제점 설명

■ 기출문제 유형 2 - 경북대 2008학년도 예시 [난이도 수준-중2~고1]

아래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중심으로 제시문 (가)의 밑줄 친 주제에 대해 한 편의 논술문을 작성하시오.

(물음1)

제시문 (라)와 (마)의 핵심 논쟁점을 기준으로 제시문 (나)~(바)의 입장을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

(물음2)

만약 제시문 (다)와 (마)의 입장을 비판한다면 각각 어떤 문제점들을 지적할 수 있는가?
(물음3)

앞의 물음2에서 지적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제시문 (바)의 입장이 어떤 장단점을 갖고 있는가?

(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인간 생활의 풍요와 만족은 물질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이 고루 갖추어져 있을 때에 가능하다. 행복한 인간의 생활을 생각할 때, 물질적 측면인 경제 문제만을 따로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자연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고, 그것을 어떻게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냐의 문제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해결해 준다. 반면에 생산하여 공급된 것을 어떻게 분배하고 소비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사회 윤리와 사회 정의의 원칙에 따라 해결되어야 한다. 공정한 배분과 관련된 주요한 쟁점으로는 "무엇을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와의 문제로 나누어 고찰해 볼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대상들을 어떠한 기준에 의해 분배할 때 공정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정의론의 핵심적 문제이다.

― 고등학교 교과서 < 윤리와 사상 >
(다)

공산주의 사회의 낮은 단계에서 통용되는 동등한 권리는 여전히 부르주아적 권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자들의 권리는 그가 제공하는 노동에 비례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뛰어나서,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거나 아니면 더 오랫동안 노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동등한 권리는 불평등한 노동에 대해서는 불평등한 권리가 된다. 이 권리는 어떠한 계급적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같이 노동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암암리에 불평등한 개인적 소질을, 따라서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노동 능력을 자연적 특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내용상 불평등한 권리인 것이다. (중략)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가 되면, 즉 개인이 노예처럼 분업에 예속되는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지고 나면,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제1차적인 욕구가 되고 나면,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여 집단적인 부의 모든 원천이 흘러넘치고 나면, 그때에야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좁은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다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마르크스, < 고타강령비판 >
(마)

왜 소유 상태는 부분적으로 자연적 재능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가? 이에 대한 롤즈의 대답은 이러한 천부의 재능과 자산은 응분의 것이 아니므로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자의적'이라는 것이다. 롤즈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천부적 자질에 대해 개별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일종의 합동 자금과 같이) 자연적 자산 전체에 대해 어떤 소유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자연적 능력들은 '공유 자산'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왜 롤즈의 주장처럼 천부적 자질에 대한 인식이 원초적 입장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 원초적 입장에 있는 개인들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속성의 일부는 알아야만 한다. 이성적 능력 등등이 도덕적으로 자의적이라는 사실로부터 이들 특성에 대한 인식을 원초적 입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공동체에서 재능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이익을 얻으며 이들이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더 잘 살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더 뛰어난 능력이나 노력 때문에 일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만큼 잃게 되는 제로섬(총액 불변) 게임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회에서 개인들의 재능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이익이 된다.

― 노직, <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 >
* 제시문 (나), (라), (바)는 생략함.
■ 해결 전략

문제에는 답안 작성 때 고려할 점이 세 가지 물음으로 제시됐다. 최근에는 이처럼 한 편의 긴 답안을 요구하기보다는 단계별 답안제시형으로 출제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문제에 제시된 세 개의 물음은 각각 독립된 문제로 채택될 수 있다.

이 문제와 같이 하나의 답안 안에 몇 가지 고려할 사항이 주어지고 한 편의 긴 답안을 요구하는 경우, 짧은 답안 여러 개를 단계적으로 작성하는 문제와 답안의 골자는 같지만, 서술에서는 약간 다른 전략이 요구된다. 개별 물음에 대한 답안을 전체 글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해 하나의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물음 2)로 주어진 '문제점 지적'은 (물음 1)과 (물음 3)의 연결 고리가 되는 동시에 논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문제점을 분석해내야 하는 대상이 되는 제시문 (다)와 (마)에는 (가)에 제기된 질문, 즉 "어떠한 기준에 따라 배분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각기 다른 입장이 나타나 있다. (다)에서는 타고난 능력 또는 자질에 따른 분배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배분은 공산주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는 능력이나 자질에 따른 분배는 낮은 수준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며, 보다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 사회에서 분배의 기준으로 '필요'를 든다. 한편, (마)에는 개인의 탁월한 능력이 당사자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연결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관점에서 개인의 재능에 따른 차별적 대우는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다)의 관점을 적용할 경우 선천적으로 열악한 조건을 타고난 사회적 약자는 구성원 간의 협력 아래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능력을 계발하고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적극적인 개인적 노력은 약화될 수 있다. (마)의 관점은 탁월한 능력을 지닌 개인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역동적으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노력만으로 도달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 구성원들이 절망하고 의욕을 상실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능력에 따른 경제적 보상으로 말미암은 빈부격차의 문제 또한 피할 수 없다.

■ 자료 검색

사회 구성원 분배 보장은 국가의 책무

'분배적 정의' 부정하는 비극

지난 2분기 중 5분위(상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664만8968원)은 1분위(하위 20%) 가구 소득(89만1240원)의 7.46배였다. 2003년 이후 최고치다. 아이엠에프 위기 이후 본격화한 소득양극화 추세가 새 정부 출범 이후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성장만 하면 분배는 따라온다는 생각이 강하다. 분배적 정의의 실종이다.

분배적 정의는 재산을 사회 전체로 재분배해 모든 사람이 일정 수준의 물질적 수단을 제공받도록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한다. 18세기 이후 서구에서 만들어진 이런 정의 개념은 적어도 다섯 가지 전제를 필요로 한다고 < 분배적 정의의 소사 > (서광사 펴냄)는 말한다.

첫째, 각 개인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선을 가지며 개인은 그 선의 추구에서 일정한 권리와 보호를 받아야 한다. 둘째, 물질적 재화의 어떤 몫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을 만한 권리와 보호의 일부다. 셋째, 이는 종교 등이 아니라 순전히 세속적 용어로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넷째, 이런 재화…의 몫을 분배하는 것은 실천 가능하다. 다섯째, 개인이나 조직이 아니라 국가가 그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

곧, 분배적 정의의 기초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은 좋은 일이며 공통의 책무라는 사실이다. 각 개인은 자신의 행동능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확보할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분배적 정의의 대상을 물질로 국한시킬 이유가 없다.

' 분배적 정의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빈민을 빈곤 속에 붙들어둘 가치에 대한 믿음이었다. "불완전한 존재들(빈민)은 자연의 실패작이며 그런 것으로 밝혀지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소환된다. … 만약 그들이 생존하기에 충분히 완전하다면 그들은 분명 생존할 것이고 생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그들이 생존하기에 충분히 완전하지 않다면 그들은 죽을 것이고 죽는 것이 가장 좋다." 19세기에 구미 지식인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의 하나로 꼽힌 허버트 스펜서(1820~1903)의 말이다. 이런 사고방식에서 분배적 정의는 죄악이 된다. 20세기 후반 서구 복지국가에 대한 반발로 힘을 얻은 신자유주의는 이런 사고의 연장선에 있다.

분배적 정의의 바탕에는, 인간이 닥친 문제들은 충분한 재능과 선의만 주어지면 해결될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있다. 이런 생각은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이 됐다.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단 한 차례 지날 뿐이다. 비극 중에서도 생명의 성장을 저지하는 것만큼 비참한 비극은 없다. 또한 불공평 중에서도 내부에 있다고 잘못 인식돼, 외부에서 부과된 한계에 의해 노력할 기회나 희망을 가질 기회조차 부정하는 것만큼 심각한 불평등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는가.

- < 한겨레 > , 2008년9월19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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