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4인의 윤이상 스페셜 리스트 고통 속에 빛났던 예술혼 연주한다

설경. 2007. 9. 6. 00:02




[중앙일보 김호정]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95)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하는 '2007 윤이상 페스티벌'이 9월부터 11월에 걸쳐 열린다. 그의 생일(9월 17일)과 기일(11월 4일)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추모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다.

부인 이수자(80) 여사도 10일 귀국해 이 페스티벌을 참관할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의미가 깊다. 69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윤이상과 함께 독일로 돌아간 뒤 베를린.평양을 오가며 지내다 처음으로 한국에 오는 것이다. 남편의 명예회복과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한국 방문을 미루던 이씨의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모두 열 차례의 연주회가 포함된 이번 페스티벌에는 '윤이상 스페셜리스트'로 꼽히는 연주자들이 참가한다. 다음은 지휘자 정치용.구자범, 첼리스트 고봉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씨가 말하는 '인간 윤이상, 음악인 윤이상' 이야기.

◆인간 윤이상=독일의 명문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의 수석지휘자로 임명돼 화제가 됐던 구자범(37)씨는 윤이상과 생일이 같다. 윤이상은 1917년, 구씨는 70년생이다. 전화 인터뷰에서 "생일까지 같다는 것을 알고 운명임을 느꼈다"고 말한 그는 "윤이상의 악보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장단과 가락을 소재로 한 윤이상의 악보에는 아주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서 곡을 쓰는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얘기다.

윤이상의 곡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실내악단을 국내 최초로 창단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65.서울바로크합주단 리더)씨는 "70년 베를린에서 공부할 당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를 연주하기 어려워 직접 레슨을 받기 위해 찾아갔다"고 술회했다. 윤이상은 "연주하기도 가르치기도 힘든 곡"이라면서도 혼을 담아 레슨을 했다고 한다. 윤이상이 악보 한 켠에 '김군,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가게'라고 써준 문구는 아직도 김씨의 서재에 있다. 그는 "84년 윤 선생이 평양에 정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과는 달리 정말 정치적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냉대하는 한국과 '모셔가는' 북한의 차이 때문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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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인 윤이상=미국 하버드대 생물학과에서 수학 중인 첼리스트 고봉인(22)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윤이상의 음악에서는 서러움과 고통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고씨가 처음 연주한 곡은 2003년 통영에서 열린 경남 국제 음악콩쿠르의 본선곡인 첼로 협주곡. 그는 "작곡가가 감옥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쓴 첼로협주곡은 너무나 어렵고 고통스럽다"며 "이 곡을 듣는 청중이 그의 인생을 경험하듯 한 음 한 음 듣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지휘자 정치용(50.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는 95년 일본 도쿄로 떠났다. "단지 윤이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당시 힘겨운 투병 중이던 윤이상과 단 한 번의 만남이었다. 윤이상은 정씨에게 "유럽 연주자들이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려 애쓰며 내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좋다"면서도 "하지만 한국 사람이 연주할 때 내 음악은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젊고 실력 있는 지휘자인 자네가 그런 길을 잘 걸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시향 수석 객원지휘자이던 99년 "매달 한곡씩 윤이상을 연주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래 그는 윤이상 연주에 매진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윤이상=동서양의 현대 음악을 결합한 세계 최고의 작곡가로 꼽힌다. 한국 음악의 연주 기법을 서양 악기에 완벽하게 결합했다는 평가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56년 프랑스 파리국립음악원을 거쳐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했으며, 59년 독일 다름슈타트 음악제에서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해 유럽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67년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서울로 강제 소환돼 사형 구형,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고 2년간 옥고를 치렀으나 세계적인 구명 운동으로 풀려났다. 71년 독일에 귀화한 뒤 72년 뮌헨 올림픽 개막 축하 오페라 '심청'을 비롯, 옥중에서 작곡한 '나비의 꿈'(68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광주여 영원하라'(81년) 등 120여 편의 음악 작품을 남겼다. ▶김호정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hjk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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