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45년 말 호주의 어느 시사잡지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의 새로운 풍습을 ‘카고 컬트(Cargo-Cult)’라고 명명했다. ‘화물 숭배’쯤 되는 말이다. 카고 컬트는 나중에 ‘사이비 과학’이나 ‘모조품’을 지칭하는 용어로까지 진화했다.
발음이 비슷해서일까. 요즘 중소기업들을 짓누르고 있는 공포의 단어인 키코(KIKO·환위험 회피상품) 얘기를 들으면 ‘카고’가 연상된다. 1조7000억원에 달하는 키코 손실은 정부의 무리한 환율정책에 기업의 무지가 겹쳐서 발생한 대란이다. 키코에 집중 가입했던 지난해 하반기 원화 환율은 907~950원대에 불과했고, 환율이 더 떨어지리라는 불안감이 높았다. 정상적인 환헤지 목적이라면 실제 수출액의 절반 정도를 계약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많은 중소기업들이 수출액의 몇 배가 넘는 계약으로 위험을 키웠다. 키코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거론되는 태산LCD도 160%가 넘는 오버헤지를 했다. 피해 중소기업들은 아무리 거래은행의 직간접적인 ‘압력’ 때문이었다고 변명하지만 키코를 거의 숭배하는 듯한 이들의 행동은 카고 컬트를 연상케 한다.
정부의 행태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내건 747 선거공약(7% 성장률, 4만달러 소득, 세계 7대 강국)은커녕 경제가 거덜 날 판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1차적 원인이지만 취임 초 정책 집행과정에서 무리수를 둔 것이 화를 키웠다. 정부가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처럼 구호물자(747공약)만을 노리며 야자열매 헬멧을 쓰고 나무막대기 소총을 든 채 비행기를 기다린 셈이다.
원유와 원자재값 인상이 물가불안을 초래했다고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정부가 수출을 위해 환율정책을 무리하게 편 탓이다. 높은 환율이 물가를 다락같이 끌어올려 서민경제를 파탄지경에 이르게 했다. 정부가 뒤늦게 환율을 끌어내리려니 이번에는 외환위기 때처럼 외환보유액이 바닥날까 좌불안석이다. 여기에 자칫 금리마저 급등하면 가뜩이나 위태위태한 주택시장이 순식간에 무너질 가능성도 있어 딜레마에 빠져있다.
경부 대운하와 같은 대형 토목공사를 벌이고,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일본은 경기를 살린다며 1992~2000년까지 무려 12차례에 걸쳐 토목사업을 주축으로 한 대대적인 경기진작정책을 펼쳤다. 1000조원 가까이 투입됐다. 그러나 일본의 경기침체는 오히려 심해졌다. 한계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문에 재정을 지출하니 소득이 뒷걸음질 치고 결국은 경기부양에 실패했다. 지금같이 어려운 국면일수록 단기부양에 대한 유혹을 억제해야 한다. 오히려 마이너스 경제성장의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환율과 물가부터 안정시켜야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진다.
우린 모두 환상을 갖고 있고, 서로 속고 속이면서 산다. 때론 스스로 파놓은 속임수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의사결정을 할 때는 원인과 결과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무리한 목표를 세워놓고 남의 흉내만 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미군 비행기에 대한 기다림은 일종의 신앙으로까지 발전했다. 원주민들은 지금까지도 짐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현지인의 조상과 함께 오는 날, 그날이 바로 이상향이 실현되는 날이라고 믿고 있다.
[주간국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76호(08.10.15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사설,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日製 美製 골프채로 치면 공 더 잘 맞나 (0) | 2008.10.15 |
---|---|
[횡설수설/정성희]스펙 노이로제 (0) | 2008.10.15 |
[사설] 투기 심리 솎아내야 시장 원기 회복된다 (0) | 2008.10.14 |
[사설]세계 흐름과 거꾸로 가는 금산 분리 완화 (0) | 2008.10.14 |
[사설] 수출기업들도 고통분담에 나서라 (0) | 2008.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