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인생

수능 뒷바라지 끝…엄마는 허전하다

설경. 2008. 11. 21. 19:22

지난 13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다. 수험장 인근 공항의 비행기 이륙이 금지되고 공무원 출근 시간이 한시간이나 늦춰지는 등 뉴욕 타임스가 해외 토픽으로 소개할 정도로 이색적인 풍토다. 하지만 이를 이해 못 할 한국인은 없다. 문제는 그 이후다. 수능이 끝나고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심각한 '빈둥지증후군'을 겪기도 한다. 자식들의 수능과 대학입학에 따라 달라지는 부모의 생애 주기와 역할상을 알아본다.

▶수능이라는 이름의 굴레, 부모를 옥죄다.

지난해 아들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보낸 김희경(49·여)씨는 한달에 한번 상경 길에 오른다.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과 옷가지를 챙겨 자취방으로 향한다. 하지만 아들은 없다. 수업과 학과 행사, 모임 약속 때문에 언제나 바쁘다. 빈 자취방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해놓고 책상을 정리한다. 학원을 선택하고 시험 일정을 챙기고 건강식품을 만들어 먹이던 십수년의 세월에서 나온 습관들이다.

처음엔 아들의 반응이 괘씸했다. 자취 생활을 곧잘 해내는 것이 대견했지만 한편으로 속도 상했다. 그녀는 아직도 아들 이야기를 꺼내면 눈시울을 붉힌다. “대구집 아들 방을 치우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집착하는 것은 아들이 아닌 아들을 중심으로 살아온 그녀의 삶이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 교육시스템이 만들어낸 비극으로 진단한다. 높은 교육열과 대학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것. 자녀가 독립심과 정체성을 형성하면 부모에겐 상실감과 불안감이란 감정이 똬리를 틀 수밖에 없다. 곽호순 병원의 임주현 전문의는 해결방안으로 관계 재정립을 꺼내들었다. 임 전문의는 “자녀를 키워 독립시킨 것은 부모가 가진 사회적, 도의적인 소임을 다한 것으로 이젠 자녀 양육 이후 부부의 삶을 설계할 때”라고 조언한다. 즉 자녀를 통한 자존감 형성이 아닌 내적 성숙을 이뤄내라는 것이다.

▶‘학부모’에서 ‘중년 부부’로 변신을 꾀하다.

수능이 끝나자마자 학부모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각종 입시설명회와 학원, 학교 등을 다니며 정보를 구하는 일이다. 혹자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이해력, 아이의 체력, 동생의 희생’이 대학 입시의 성공 열쇠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수험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가정사의 한 단면이다.

문제는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고찰이 없다는 것이다. 빈둥지증후군(empty nest syndrome:중년의 주부가 자기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이 대표적인 경우다. 탈진증후군(burnout syndrome:정체감 혼란과 우울증에 짓눌려 나타나는 무기력증)도 이 시기 학부모에게 찾아오는 우울증 중에 하나다.

정일경 서대구병원장은 일자리 구하기와 취미생활 갖기, 평생교육원 수강 등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정 원장은 “가까운 지인과 함께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나 운동, 사회생활 등을 모색해 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조언한다. 가족사랑정신과 진스마음클리닉의 박용진 원장 역시 ‘성공침체기(success depression)’ 극복방안으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권한다. 박 원장은 “부부 중심의 생활 패턴으로 복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집착하는 태도 역시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20, 30대 수험생 둔 가정, 부모의 구심점 역할 필요

극심한 취업난으로 최근엔 20, 30대 취업준비생 자녀를 둔 부모도 늘고 있다. 수천만원을 들여 대학 공부를 시켰지만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문은 1년, 길게는 3년가량의 취업준비 기간을 요구한다. 중년부부들에겐 숨 막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 기간을 인생의 장기 레이스 중 하나로 볼 것을 조언한다. 마음과 마음 병원 김성미 원장은 “성인 자녀의 도전을 격려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부모일 수 있다”며 “인생에서 2, 3년의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전제 하에 자녀의 도전정신에 진정한 격려를 보내줄 것”을 당부했다. 나눔 아동가족상담연구소 나양수 소장 역시 “신체적, 정서적으로 독립된 20, 30대 자녀의 결정을 믿고 지지해 줄 것”을 권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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