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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멀티태스킹’의 심리 / 곽금주

설경. 2007. 9. 14. 00:02

						

[한겨레] 가을이다. 한여름의 휴식을 뒤로하고 이제 대부분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와 휴대폰, 쏟아지는 이메일, 처리해야 할 서류들, 각종 회의와 회식으로 정신이 없다. 돌아서기 무섭게 쏟아지는 업무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느 하나에 차분히 집중할 수가 없다. 할 일은 너무나 많고, 시간은 너무나 없다. 누구에게나 몸은 하나이고 하루는 24시간이므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까. 심리학 연구들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비효율적임을 보여준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게 할 때는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재집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이때 뇌를 촬영하면 대뇌 움직임 역시 현저하게 둔해진다.

이러한 멀티태스킹의 한계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나타난다. 20대 초반 청년들과 40대 성인들에게 단순한 과제를 제시하고 수행을 비교한 결과, 방해가 없는 조건에서는 20대의 수행이 더 좋았다. 그러나 전화벨 소리, 휴대폰 문자메시지, 메신저 알림음에 의해 방해를 받을 때 두 집단의 속도와 정확도는 비슷하게 떨어졌다. 20세기 첨단기술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멀티태스킹에 유능하다. 그들은 이메일을 하면서 메신저를 하고 동시에 아이팟을 조작하여 음악을 듣는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멀티태스킹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은 것이다. 누구에게든 한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은 여러 방해자극들을 일상에 산재하게 만들고, 수행을 떨어뜨리게 만든다.

현대인들은 우리 뇌가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정보에 노출된 새로운 환경에 놓여 있다.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기 위해 우리는 잠을 더 적게 자고, 더 늦게까지 일을 붙잡고 있는 식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항상 할 일은 쌓여 있고, 시간은 여전히 부족하며, 역시 생산성은 떨어진다. 더욱이 ‘빨리 빨리’를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는 우리를 초조와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우리의 뇌는 우리가 처리하지 못한 일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동료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불쑥 상사가 시킨 업무를 떠올리게 만드는가 하면, 메일을 확인하다가도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기획안을 상기시킨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이나 고민에 지쳐 잠시 묻어두었던 업무를 잊어버리지 않게 도와주는 이러한 뇌의 기능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동안 저 일이 생각나고, 또 막상 저 일을 잡으면 다른 돌발적인 상황이 생겨 업무를 방해하고, 우리의 복잡한 머릿속이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국 이 조급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일에 치여 지내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멀티태스킹에 능숙한 사람이 되느냐가 결정된다. 멀티태스킹에 능숙하려면, 사실 많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하나씩, 집중해서 빨리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씩 처리해 나갈 때 오는 성취감은 자신감을 가져오고 다음 일에 박차를 가하게 한다. 다음 일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 아주 짧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처리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빨리 결정하고 집중적으로 실행하고, 다음 일로 빨리 넘어가는 순발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일에만 너무 매달리기보다는 오히려 한발짝 물러나는 것 또한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의 쉴 틈, 나만의 빈 공간과 빈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진정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풍성한 결실의 가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곽금주/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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