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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데스크] ‘윤이상 아이러니’

설경. 2007. 9. 13. 00:01

						


▲ 김성현 문화부 공연팀장
숨을 거둔 지 100년이 지났지만 독일 작곡가 바그너(Wagner)는 지금도 이스라엘에서 ‘금기’의 대상이다. 지난 2001년 유대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Barenboim)이 베를린 국립 오페라단을 이끌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1막을 공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측은 예정 곡목을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슈만과 스트라빈스키의 곡으로 프로그램을 바꿨다.

연주가 끝난 뒤 바렌보임은 청중들의 동의를 구해 앙코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일부를 연주했다. 하지만 공연 직후 이스라엘 의회의 문화교육위원회는 지휘자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문화 행사에서 히틀러가 아꼈던 반(反)유대주의 작곡가의 음악을 공연했다”는 이유였다. 예술과 정치의 잘못된 만남에서 빚어지는 후유증은 독일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이른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이 올해 40년을 맞았고, 작곡가 윤이상씨가 타계한 지도 12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고민은 한국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40년 만에 방한한 윤이상씨의 부인 이수자씨는 그동안 한국에 대해 섭섭했던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남편이 작곡가로서 혈혈단신 유럽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동안, 국가는 뒷받침하기는커녕 앞길을 막았다”고 했다. 이런 이씨의 주장과는 별도로, 지난 40년 한국 사회에는 윤이상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연유와 맥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동백림 사건’과 함께 윤이상씨와 한국의 공식적 교류는 끊겼다. 반면 북한에서는 윤이상음악연구소와 윤이상관현악단을 만들며 대대적으로 예우했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은 윤씨를 “민족의 재간둥이”라고 불렀고, 윤씨도 “김 주석을 대할 때마다 머리가 숙여진다. 나의 쓰라린 아픔을 쓰다듬어 주시는 크고 더운 가슴을 느낀다”고 했다. 윤이상씨의 가족이 한국을 탓하고, 한국에서는 윤씨의 친북(親北) 성향과 ‘간첩 활동 혐의’에 의혹을 거두지 않았으니 그 사이에 접점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는 사이 실종된 건 그의 음악에 대한 이해와 평가다. 음악계 인사들은 한국에 ‘윤이상 아이러니’가 있다고 말한다. “누구나 윤이상에 대해 알고 있지만, 정작 윤이상의 작품을 들어본 사람은 애호가 중에서도 10%도 되지 않고, 꾸준히 접하고 있는 사람은 그 중에서도 10%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이상씨는 1959년 다름슈타트 현대 음악제를 통해 주목 받았고, 베를린 필하모닉을 비롯해 유럽 정상의 오케스트라들이 앞다퉈 그의 작품을 초연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초연도 되지 못한 윤씨의 작품들이 적지 않다.

정치는 짧지만 음악은 길다. 음악은 정치와 이데올로기에 발목을 붙잡히곤 하지만, 언제나 정치에 종속되는 ‘변수’인 것만은 아니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일제의 괴뢰 정부였던 만주국의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곡을 작곡했다는 보도 이후, ‘애국가 교체론’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당시 ‘교체 검토’를 주장했던 교수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애국가는 안익태 선생의 행적과는 별도의 생명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제 ‘동백림 사건의 윤이상’이 아니라 ‘음악가 윤이상’을 말할 때라고 하면, 너무 이른 것일까. 유족들에게도 북한 체제를 감싸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 대신에 ‘음악가 윤이상’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해 달라고 주문한다면, 또 너무 이를까.


[김성현 문화부 공연팀장 danp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