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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당에 백성기 포스텍 신임 총장은 "당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쓴소리를 했다. 국제 무대에서 한국 과학기술이 톱 클래스로 인정받으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뜻일 게다.
최근 서울대 공대가 '학문적 성취 부족'을 이유로 교수 지원자 40명을 전원 탈락시킨 것을 두고 일부에선 우수한 인재가 이공계를 기피하고 외국 유학파들이 귀국을 꺼려 발생한 이공계 위기현상의 중요한 단면이라고 해석했다.
반대로 이미 검증된 인물에만 매달려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학자들을 외면한 서울대의 단견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달 발표된 세계 대학평가에서 서울대가 100위권 밖으로 처져 있는 데도 세계 '톱 30' 대학 교수를 데려오려는 '높은 눈'을 꼬집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정작 지금 우리에게는 이공계 위기론의 타당성 여부보다 이런 위기론이 나오는 이유를 따져보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매일같이 학생들을 상대하는 과학교사들에게 물었다. 왜 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하지 않느냐고.
교사들은 학생 진로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부모가 이공계 진학을 권유하지 않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은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는 점을 가장 심각하게 지적했다.
IMF 금융위기는 그 변곡점이다. 눈앞의 비용 절감을 위해 연구원이 우선적으로 감원 대상에 오른 것을 목격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안정적 직업을 갖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학습효과다. 물론 학생들도 당시 상황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지도교사들은 설명한다.
교육현장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갖기 어려운 구조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일선 교사는 "실험과 탐구를 곁들여 과학을 공부해야 하지만 빡빡한 시간 배정 탓에 이론 중심으로 진도 나가기에 바쁘다"며 "그나마 예전 같으면 중3 때 배우던 것을 고1 때 가르친다"고 말한다. 배워도 배우는 게 아니라는 푸념이다.
학생들이 소화에 어려움을 느끼는 만큼 과학교육을 학생 눈높이에 맞추려는 교사들의 노력은 절실하지만 현실은 여의치 않다. 학생들 사이에서 '제물포(쟤 때문에 물리를 포기했다)' 따위의 은어를 추방하려면 교사 평가제를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과학을 공부하지 않고도 이공계에 진학하는 현 입시시스템은 위험 천만이다. 학생들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의 '여유있는 교육'은 이미 미국이나 일본에서 폐기처분되는 추세다.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몰라도 이공계에 입학할 수 있고 이후 과외에다 우열반으로 나뉘어 지도를 받아야 하는 현실은 이미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그렇다고 이공계 장래는 잿빛 일색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너도나도 적성은 차치하고 의대 법대 상대로 몰려간다면 큰 숲을 보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할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직업은 현 시점에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학업을 마치는 10년 안팎 이후에 어떤 직업이 뜰지를 잘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밥은 굶지 않는다.
둘째, 좋아하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사회적 평판에 이끌려 흥미도 없는 분야를 평생 업으로 삼아야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외국에서 직장을 찾아야 하는 날이 곧 온다. 국내용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통할 수 있는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인재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셋째, 전공의 퓨전 추세다. 대박은 전공 간 접점에서 터진다. 이때 자연과학 전공자는 인문ㆍ사회 분야를 추가로 섭렵하는 게 그 반대에 비해 훨씬 용이하다. 물리ㆍ수학 전공자가 금융공학도로 변신해 고액 샐러리를 받는 사례도 흔하다. 최근에는 기술경영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기술을 아는 경영인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선택은 자유지만 재능을 썩히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에 모두 불행이다. 이공계 취향을 갖춘 우수한 청소년들이 마음놓고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은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
[임규준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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